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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1 07:11

[디애슬래틱] 로만의 첼시 인수 과정 풀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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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haks1.jpg [디애슬래틱] 로만의 첼시 인수 과정 풀스토리

첼시는 로만 아브라모비치에게 인수된 이후 17년 동안 16개의 메이저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러한 눈부신 성공은 21세기 영국 축구사를 완벽하게 바꿔 놓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만이 그들과 동률인 5회의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반면 뮌헨에서의 기적은 첼시가 런던에서 최초이자 유일하게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한 클럽으로 만들었다.


존 테리, 프랭크 램파드, 디디에 드록바가 주축을 이룬 2000년대의 첼시 스쿼드는 그들을 전설로 남게 했다.

가장 최근 통계에 따르면, 2018년 6월부터 2019년 6월까지 로만은 사비로 클럽에 247m 파운드를 쏟아 부었다.


물론 영광과 동반되는 좌절도 많았지만 - 첼시의 황금시대는 종종 혼란스러웠다 - 지루할 틈이 없이 흘러갔다.

17년 전 일어난 여름의 놀라운 사건으로 인해 신비로운 러시아의 억만장자는 한 팀과 잉글랜드 축구의 역사를 바꿔 놓았다.


이 글은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첼시를 어떻게 인수 했는가에 대한 관계자들의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02-03 프리미어리그 시즌 마지막 밤으로 부터 시작된다. 리버풀에게 1점 앞선 4위,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지키고 있었던 첼시는 우월한 득실로 인해 무승부만 거둬도 되었지만, 패배할 경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 아스날과의 영입 경쟁에서 밀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은 리버풀과의 마지막 리그 경기에서 반드시 무승부 혹은 승리를 거둬야 했다.



마크 타일러 (1996~2003 첼시 디렉터) :

"사람들이 말하는 것 처럼 그렇게 극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우리는 파산 직전에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챔피언스리그 진출로 인해 벌어들이게 될 돈은 채권 발행 이외 내년 4월까지 구단에 빚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만약 우리가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지 못했다면, 궁지에 몰리지는 않았겠지만 몇몇 선수들을 팔아야만 했을 것은 분명했다.

사미 하피아가 11분 만에 리버풀에게 1:0 리드를 안기자 스탬포드 브릿지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하지만 마르셀 드사이가 2분후 바로 동점골을 꽂았고, 후반에 터진 그론카예르의 왼발 슈팅은 첼시 역사상 가장 중요했던 골을 선사했다.

리버풀의 스티븐 제라드는 첼시의 르사우스에 대한 어리석은 돌진으로 퇴장을 받았고, 36세의 지오프랑코 졸라는 황홀한 밤을 맞이했다."



그론카예르 (2003년 10억불짜리 슈팅의 주인공) :

"당시 첼시에게는 엄청난 경기였다. 우리는 3년만에 챔피언스리그 출전할 기회를 목전에 두고 있었고, 나는 그 목표를 매우 잘 기억하고 있었다. 오른쪽 윙에서 수비수를 따돌린 후 왼쪽 골대 구석에 꽂아넣은 골이었을 것이다. 팀 모두가 무엇을 위해 경기하고 있는지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엄청난 리버풀과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첼시는 여전히 힘든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챔피언스리그 참가를 통한 수익은 재정에 큰 도움이 되었지만, 그들은 정상적으로 이적시장 플랜을 짤 여유가 없었다.

라니에리의 선수단은 앞으로 있을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 도전할만한 스쿼드를 갖추지 못할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때, 상황은 변했다.


며칠 후 첼시 구단에 로만 아브라모비치라는 러시아 갑부가 구단을 인수하는 것에 매우 진지하다는 것이 알려졌다.

피니 자하비 (로만의 최측근, 영향력 있는 축구 에이전트)가 그들에게 전화를 걸었고 자하비는 "인수를 진행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라고 전해왔다.



마크 타일러 : 

"협상 과정은 매우 빨랐다. 첼시는 18개월 동안 새로운 투자자를 찾고 있었지만, 그들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아주 빠르게 움직였다. 물론 그가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 그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다

그의 변호사들이 제공한 포브스지 잡지에 그는 세계 부호 15위에 올라있었다. 출발이 좋다고 생각했다."


로만은 첼시의 위계질서에 대해서는 아는것이 전무했지만 첼시라는 구단에는 많이 알고 있었다.

그의 축구에 대한 열정은 레알 마드리드의 슈퍼스타인 호나우두가 맨유를 침몰시키는 것을 보기 위해 올드 트래포드를 방문한 것으로 인해 촉발되었다. 당시 블랙번 로버스의 감독 그래미 소네스가 로만과 동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러시아인 갑부는 최대한 빠르게 구단을 소유하기를 원했다.

미국 투자 기업의 런던 소재 수석 변호사였던 브루스 벅 (현재 첼시 회장)이 일을 성사 시키기 위해 움직였다.

그들은 로만에게 제공할 인수가 가능한 다수의 잠재적인 클럽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고, 맨유와 토트넘을 포함한 다수의 구단들이 레이더에 포착되었다.


후보들 중 그들이 처음 만난 상대는 첼시였다.



마크 타일러 : 

"당시 미팅의 핵심은 그들이 구단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모두 사고 싶다고 분명하게 밝혔다는 것이다.

우리가 협상 중이었을때 로만은 그의 최측근인 유진 테넨바움과 함께 런던에 착륙해 크레이븐 코티지 상공 (풀럼 경기장)을 비행했다. 

로만은 그것이 스탬포드로 브릿지로 생각했고 "이 구장이 내가 살 구단의 홈 구장인가?"라고 물었다"


인수는 2003년 7월 1일 화요일 20시 30분경에 정식으로 완료되었고 벅과 타일러가 거래를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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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는 마무리 되었다.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구단 인수에 60m 파운드 + 구단 빛 탕감에 80m 파운드를 포함해 총 140m 파운드를 지불하는 것에 합의했다.

이 수치는 향후 그가 클럽에 투자한 규모에 비하면 적은 금액이었지만 당시 잉글랜드 축구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로만의 갑작스러운 인수는 당시 첼시 선수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했다.

시즌 종료 후 휴일을 즐기던 선수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그론카예르 :

"처음 소식을 들었을 떄,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로만이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지고 있고, 구단의 모든 것이 바뀔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지미 하셀바잉크 : 

"로만은 빠른 시간내에 챔피언이 되고 싶다고 선언하면서 최고의 선수들이 올 것이라고 장담했다. 나는 두고 보자라고 당시에 생각했다."


선수들을 영입하기 전에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감독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


당시 라니에리는 단 1건의 영입만으로 첼시를 챔피언스리그에 올려 놓으며 2000년 9월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야심찬 구단주로 인해 그가 물러날 것이라는 예상이 퍼지고 있었다.



라니에리 (당시 첼시 감독) : 

"2003년 7월 8일, 그의 사무실에서 미팅을 가졌다. 참석자는 로만과 그의 측근 3명, 그리고 나였다.

나는 그가 추구하는 목표를 빠르게 달성하기 위해서 감독을 교체하는 과정은 필연적이라고 말했다.

그때 당신의 결정을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로만은 너가 팀을 계속 이끌어 달라고 말했고, 그것으로 회의는 끝났다."


로만과 라니에리는 즉각적인 선수단 보강을 위해 모든 포지션에 훌륭한 두 선수들이 필요하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했다.

브리핑에 맞추어 [글렌 존슨 / 웨인 브릿지 / 데미안 더프]가 6일만에 37m 파운드의 가격으로 영입되었다.

8월에는 비슷한 금액에 [조 콜 / 세바스티안 베론 / 애드리안 무투]가 영입되었다.


당시 아스날 부회장은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러시아 탱크를 잔디밭에 주차시키고 우리에게 50파운드 씩을 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만큼 당시 잉글랜드 축구계는 단기간에 이루어진 엄청난 지출에 놀란 상태였다.



그론카예르 : 

"우리는 당시 컵 출전을 위해 말레이시아에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웨인 브릿지가 나타났다. 그 다음날에는 데미안 더프, 곧 머지 않아 조 콜, 베론이 합류했다. 로만은 몇 주만에 거의 한 팀 스쿼드를 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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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더프 :

"당시 맨유와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이적을 원했지만 2003년 당시 내 몸값 17m파운드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하지만 로만은 돈을 가지고 있었다. 첼시가 나를 원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들이 사들인 선수들을 구경했다.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댄 존슨 (전 프리미어리그 디렉터) :

"첼시는 계속해서 기자단을 몰고 다녔고 그들은 마치 매일매일 새로운 오피셜을 내는 것 같았다. 라니에리와 존 테리는 항상 언론앞에서 새로운 영입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 유럽의 모든 선수가 첼시와 연결되어 있었고, 100m 유로 몸값의 라울 곤잘레스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내가 라울 영입에 대한 질문을 그 둘에게 던지자 서로 바라보면서 웃던 기억이 난다."


8월 이적 시장 종료 전, 첼시는 [에르난 크레스포 / 클로드 마케렐레]를 장바구니에 넣으며 광란의 7~8월 마침표를 찍었다.


수많은 새 얼굴들이 선수단을 극적으로 변화시켰고 이는 기존 라니에리 사단의 육성군에서 1군 진출을 노렸던 많은 선수들에게는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하지만 존 테리와 프랭크 램파드와 같은 선수들에게 이적생들은 색다른 도전을 제공했다. 그들은 새로운 시대에 돌입한 클럽의 야망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들로 발전해 나갔다. 



필 영허스밴드 (당시 첼시 아카데미 선수) :

"로만이 구단을 삼키고 나서 모든 선수들은 과도기를 거쳤다. 클럽의 모든 부서에 새로운 얼굴들이 나타났으며, 모든 일들이 너무 빨리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상상만 했던 세바스티안 베론이 공을 가지고 훈련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었다."



존 테리 :

"첫 프리시즌 때 팬들의 최대 관심사는 영입생들에 의해 누가 1군에서 밀려날 것인가, 누구의 자리가 위태로운가 였다. 나는 훈련에 열중하며 당시 1군에 들기 위해 애를 썼다." 



프랭크 램파드 :

"로만이 처음 훈련장에 착륙해서 우리에게 말을 걸었던 순간이 기억난다. 그는 우리가 최고가 되기 위해 갖춰진 주위의 환경이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인수 이후 첼시 주변 시설들의 레벨이 타 구단에 비해 뒤떨어질 일은 없었다."



첼시는 2003-04 시즌을 위대한 아르센 벵거의 아스날에 11점 뒤진 2위로 마쳤고,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탈락했다.

라니에리는 트로피를 로만에게 가져다주지 못했고, 그의 첼시에서의 시간은 끝났다.


이후 열린 포르투와 모나코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조세 무리뉴가 경쟁자였던 디디에 데샹을 제치고 첼시 감독에 부임하게 된, 사실상의 오디션 역할을 했다. 2004년 여름, 로만의 투자하에 첼시는 다시 한번 기록적인 지출을 했지만 이미 팀의 코어자원들은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프랭크 램파드와 존 테리는 팀의 리더로 자리매김했으며, 2003년 영입생들은 베론과 무투를 제외하고 모두 성공했다는 후대의 평가를 받았다.



2003년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첼시 인수 이후 흘러간 시간들은 이 사건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했을 뿐이다.

광란의 여름에 한 남자가 잉글랜드 축구사를 영원히 바꿔버렸다.


https://theathletic.com/1839077/2020/05/28/chelsea-roman-abramovich-take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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