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에게 대접한 고려의 이도찻잔 우리나라말로 정호다완으로 쓰고 일본에서는 이도다완으로 통용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집권 시절 문화에 관심이 많던 오다 노부나가 시절부터 다도가 융성해지는데 그 중 제일은 센노 리큐라는 사람이다 센노 리큐를 통해 조선에서는 그리 귀하게 여겨지지 않는 이도다완에서 불균형의 미, 소박함의 미를 찾고 와비사비문화를 녹여 다도를 통해 하나의 문화로 완성 시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내밀었을 저 이도다완은 이미 저당시 일본에서는 가장 인기있고 가치있는 도자기 중 하나였을 것 그것을 알리 없는 통신사는 조선에서는 흔해빠진 막사발로 대접을 한다고 여겼을 것이지만 사실은 당대 최고의 문화를 즐기기 위한 최고의 도자기로 대접한 것임 그것을 거절하고 자기네 도자기가 최고라고 하였으니 도요토미 히데요시 성격에 곱게 보일리가 없고 임진왜란이 사실상 도자기 전쟁으로 불리는데에도 이러한 다도 문화적인 배경이 있다
선조는 정치 속 '파워게임'은 잘했음. 하지만 정작 정치를 '왜' 해야 하는지를 몰랐음. 부산에 정비를 명했지만 그만한 재정따윈 지원해주지 않고 어떻게 자기들끼리 으쌰으쌰 해보기를 원했음.. 그러니 상소가 올라온거임. 현상유지만 가능할 재정으로 보수 및 강화를 하라는데 일반인들은 개빡치지.. 이걸 해낸것이 이순신장군이고 이는 존경해 마땅할 것이지만 사실 조선은 군사체제 자체를 손봐야 하는 지경이었음. 실제로 전란 후 이 문제들이 부각되어 여러 문제들을 수정하려 애썼으나 병자호란까지 터져서 걍 에라 모르겠다 꼴이 나버리긴 했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