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룸피니 복싱 스타디움의 로고)
안녕
이 글에서는 태국의 룸피니 스타디움에 대해 다뤄보려고 한다
BSC Media 무에타이 칼럼(https://m.blog.naver.com/sukmooi/221322473193)에서 많은 부분 참고하여 작성했다.
글을 읽고 관심이 생긴다면 여기로 들어가서 정보 찾아봐
(자라나는 급식타이. 태국 초딩들하고 싸우면 질 확률이 높다)
태국은 무에타이의 본고장이다.
낙무아이(무에타이 경기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의 경력은 이르면 8~9살, 늦으면 11살 정도의 나이에 시작된다.
그래서 20대의 나이의 선수들이 200~300경기에 육박한 커리어를 가진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태국의 가난한 계층의 아이들은 어린 나이부터 경기를 뛰며 대전료를 받아 가족의 생계를 부양한다.
이들에게 무에타이는 가난을 벗어나 돈과 명예를 모두 얻을 수 있는 길이다.
하지만 수많은 낙무아이 중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소수의 재능러뿐이다.
(K-1 팬에게는 유명한 낙무아이 쁘아카오 반차멕은 태국에서 국민적인 인기를 누리는 스타이다)
이런 낙무아이들에게 룸피니 스타디움은 꿈의 무대였다.
룸피니 스타디움에서 경기를 하는 것은 곧 그 선수가 메이저급이라는 소리다.
아이유가 고척돔을 매진시키고 국힙 원탑 소리를 들었듯, 태국 무에타이계를 먹었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선 룸피니 스타디움을 가득 채워야 했다.
메인이벤터의 경기가 잡히게 되면 룸피니 스타디움은 피마원 드로우가 시작할 때까지 대기타는 패갤러들처럼 인산인해를 이뤘다.
(2014년 태국 군부 쿠데타 사건을 아는가? 태국 군부의 위세는 국왕의 권력으로부터 나오는 동시에 왕권을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20세기 중반, 태국 정부는 무에타이를 일종의 관광상품으로 만들기를 원했다.
한편으로는 비슷한 형태의 무술을 갖고 있던 미얀마나 캄보디아 등 주변국들과 벌이던 무술 종주국 다툼에서 무에타이의 스포츠화를 통해 태국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를 원했다.
정부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무에타이 시장 규모는 커지게 되었다.
(1980년대 태국 무에타이 최고의 스타 사마트 파야카룬. 외모+실력으로 태국에서 연예인 뺨치는 인기를 얻었다)
1956년 건설된 룸피니 스타디움은 이러한 국가적인 무에타이 밀어주기에 수혜를 받는 동시에 무에타이 흥행에 기여를 했다.
룸피니 스타디움 소유권을 가진 태국 왕립 육군(Royal Thai Army)의 후원을 받은 프로모터와 체육관들은 무에타이계 최고의 스타들을 룸피니의 링으로 데려왔다.
또한 이들은 해외 선수들이 태국 무에타이에 도전하는 것을 피하지 않으며 매치를 주선하기도 하면서 세계에 태국 무에타이의 강함과 무서움을 보여주었다.
무에타이는 점차 국민적인 인기를 얻게 되고. 룸피니 스타디움은 업계 최고들만 올 수 있는 장소로서 평가받게 된다.
(투계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
(저들 중 누군가는 빵뚜아 이낫의 경기력을 보고 '저 시발놈'을 외친 경험이 있다)
프로스포츠는 입장료만으로는 큰 돈을 벌 수 없다.
태국 무에타이계도 예외는 아니다.
다른 국가의 프로스포츠 단체는 기업과 광고/후원 계약을 맺거나, 타국에 중계권으로 팔거나, 부가상품을 만들어 팔아 수익을 얻지만, 태국 무에타이계를 지탱하는 근간은 바로 배팅이다.
태국은 한 해 약 3천만 명(전체 인구 7천만 명)이 배팅을 할 정도로 불법도박이 흔하게 이루어 지는 국가이다.
태국의 국왕 라마9세가 생전에 정부발행 복권, 경마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배팅을 불법으로 규정한 것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지만, 축구나 투계 같은 각종 스포츠에서 가족이나 친구끼리 결과에 대해 내기를 하거나 경기장에서 배팅을 거는 것은 태국인에게는 평범한 취미활동이다.
(룸피니를 빛낸 레전드.jpg)
룸피니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무에타이 매치는 그해 최고액의 판돈이 오가는 메인이벤트였다.
좌석은 한정되어 있고 입장료는 한도가 있지만, 불법 배팅은 액수의 한계가 없다.
점심 저녁을 아껴 모은 돈은 강자의 링사이드에 배팅되었고 이렇게 모인 액수만큼 그 선수의 가치는 올랐다.
1982년 12월 24일 룸피니 스타디움에서 열렸던 `디젤노이 vs 사마트`는 당대 최강의 매치업이었다.
이 경기에서 선수들은 각각 40만 바트, 35만 바트의 대전료를 받았다고 한다.
(1980년 당시 1바트=30~35원. 즉 한국 돈으로 약 1200/1000만 원을 받은 것. 이는 2019년 기준 약 5700/4700만 원의 가치에 해당한다)
1980년대 국민스포츠로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무에타이.
룸피니 스타디움 역시 최고의 전성기는 이 시기였다.
(1941년 건설된 랏차담넌 스타디움은 2000년대까지 룸피니 다음가는 콩의 위치를 지키고 있었다)
(1941년 건설된 랏차담넌 스타디움은 2000년대까지 룸피니 다음가는 콩의 위치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룸피니 스타디움은 더이상 업계 최고의 위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한때 룸피니 스타디움은 접근성, 흥행성, 그리고 상징성 모든 것을 갖춘 경기장이었다.
방콕 외곽으로 위치를 이동하여 랏차담넌 스타디움에 접근성에서 밀렸다.
업계 1,2위 프로모터가 랏차담넌 스타디움으로 이동하여 흥행성에서 밀렸다.
룸피니 스타디움의 소유주는 태국 왕립 육군인데, 랏차담넌 스타디움은 국유기업 형태로 태국 왕실이 소유하고 있다.
왕실의 경기장이 군부의 경기장보다 평가가 낮으면 안된다며 룸피니 스타디움의 위치를 방콕 중심지에서 벗어난 곳으로 옮기게 했다는 말이 있다.
현재 1위로 평가받는 경기장은 랏차담넌 스타디움이고, 룸피니 스타디움은 2위급도 아니고 4위급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2014년 12월 4일 경기를 마지막으로, 룸피니 스타디움은 방콕 외곽의 새로운 위치로 자리를 이동했다.)
경쟁자에게 밀린 위상,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격투계 전체적인 흥행 저하까지 겹쳐
룸피니 스타디움은 더이상 과거의 영광을 회복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태국 무에타이 프로스포츠의 역사에서 룸피니 스타디움이 최고의 무대였다는 사실은 남아 있다.
틀린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줘
읽어줘서 고맙고, 시간나면 낙무아이 레전드들에 대해서도 써보도록 해볼게
<자료 출처>
BSC Media 무에타이 칼럼(https://m.blog.naver.com/sukmooi/221322473193)
나무위키 - 무에타이, 태국 정치
영문위키 - 무에타이, 룸피니 스타디움, 랏차담넌 스타디움
태국 도박 -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4298629
<사진 출처>
영문위키 - 무에타이, 룸피니 스타디움, 랏차담넌 스타디움
룸피니 복싱 스타디움 공식 홈페이지(https://www.lumpineemuaythai.com/)
tripadvisor.com
https://milkblitzstreetbomb.com/muay-thai/gambling-side-bet/
https://www.scmp.com/lifestyle/article/2168323/muay-thai-child-fighters-put-their-health-line-gamblers-and-hope-better
https://www.headout.com/shows-and-entertainment-in-bangkok/muay-thai-match-at-lumpinee-boxing-stadium-e-12565/
https://sg.news.yahoo.com/supergirl-steal-show-one-breed-084624432.html
https://cn.reuters.com/article/us-thailand-military/new-army-chief-takes-over-as-thailand-prepares-for-return-of-civilian-rule-idUSKCN1M8133
https://www.muaythaicitizen.com/muay-boran-vs-muay-thai/
https://www.reuters.com/news/picture/high-stakes-cockfighting-in-thailand-idUSRTX4XYXV
http://fightland.vice.com/blog/confessions-of-a-muay-thai-gambler
https://www.muaythaicitizen.com/muay-boran-vs-muay-thai/
https://www.siamfightmag.com/en/muaythai-en/reports-en/others-reports-muaythai-en/889-the-myth-samart
카오클라이가 최홍만과 싸워 패배했지만 나름 큰체급 선수들한테 선전하면서 국내인지도 좀 있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