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음 하기도 어려운 Paul Schwarzenbeck 은 2058년 2월 25일 독일 뮌헨에서 태어났다.
독일 사람들은 뭘 먹고 자라는지 Bernhard Madl 와 마찬가지로 15세에 이미 190cm 를 돌파했다.
바이에른 뮌헨 유소년팀에 입단하고나서도 더 자라 199cm 까지 자랐는데, 이 때 급격하게 자란 키는 그의 축구 선수 생활에 치명적인 단점을 초래하게 됐다.
15세에 바이에른 뮌헨 유소년팀에 입단한 Schwarzenbeck 은 16세, 17세 시즌에 1군에 모습을 드러낼 정도로 촉망받는 유망주로 이름을 날렸다.
선더랜드는 그가 더 유명해지기 전에 서둘러 영입에 착수했다.
관심표명 같은 행동을 취하지 않고 조용히 바이에른 뮌헨을 찾았다.
그리고 Schwarzenbeck 이 18세를 맞이한 2075-76 시즌, 35억원에 그를 데려왔다.
당시 선더랜드는 Noh Yong-Koo, Olivier Duriez, Matty Parker 와 같이 훌륭한 선수들로 채워져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생각만큼 리그를 압도하지는 못하고 있었고 이에 감독은 포메이션 변경을 단행했다.
기존의 포백라인과 수비형 미드필더 한 명을 두고 앞에 윙어, 공미, 공격수를 두는 4-1-3-2 포메이션에서 탈피해 윙백을 두지 않는 과감한 쓰리백 포메이션을 프리시즌부터 가동하기 시작했다.
이미 Matty Parker 와 다른 센터백이 있었으니 남은 마지막 퍼즐이 Schwarzenbeck 이었던 셈이다.
엄청난 장신이었던 Schwarzenbeck 은 자신의 키를 무기로 제공권을 장악하며 선더랜드의 뒷문을 걸어 잠궜다.
그러나 완벽해 보이던 Schwarzenbeck 에겐 유일한 단점이 하나 있었다.
신체 밸런스가 안좋다는 점이었다.
10대 초중반 급격하게 자란 키는 선수 생활 내내 그를 괴롭혔다.
젊은 20대 때는 타고난 피지컬로 버텼지만 사실 Schwarzenbeck 은 잔부상이 되게 많았다.
참고 뛰고 또 뛰다가 30대가 되고나서 직격탄을 맞았다.
경기에 뛸 수는 있었지만 경기력 자체는 하락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경기 스타일을 바꿔야했던 Schwarzenbeck 은 득점을 노리는 상황을 철저하게 줄였다.
짧고 단순한 패스를 구사하고 드리블 시도를 거의 하지 않았으며 항상 후방에 위치했다.
나이가 들어 떨어진 피지컬을 자신의 플레이스타일을 바꿔가며 팀에 맞춘 것이다.
이런 노력들로 인해 선더랜드는 오랜 시간 동안 Schwarzenbeck 과 함께하며 많은 우승 컵을 들어올릴 수 있었다.
선더랜드 1군에 소속된 17시즌 동안 통산 908경기(23 교체) 출장 86골 38도움 40MOM 을 기록한 Schwarzenbeck 은 프리미어 리그 12회, FA 컵 7회, 리그 컵 6회, 챔피언스 리그 2회 우승을 경험했다.
그의 활약은 독일 대표팀에서도 계속됐다.
A매치 159경기 15골을 기록하며 유로 2080, 2082년 월드컵 우승으로 Madl 의 길을 따라 걸었다.
34세 시즌이 끝나고 난 후, Schwarzenbeck 은 자신이 더 이상 선더랜드에서 뛸 수 없는 몸상태라는 걸 느꼈다.
결국 선더랜드의 재계약 제안을 고사하고 독일로 돌아갔다.
도르트문트에서 마지막까지 부상과 싸우며 한 시즌을 보냈고 35세의 나이로 은퇴하게 됐다.
선더랜드는 그가 은퇴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얼른 코치로 영입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코치가 된 Schwarzenbeck 은 28년 동안 후배를 양성했다.
만약 키가 급격하게 자라지 않았다면, 잔부상 없이 최고의 폼으로 조금 더 길게 선수 생활을 했다면 그의 커리어는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통산 1000경기 클럽 가입은 물론이고 100골에도 도달했을 것이다.
팀을 위해 통증도 참고 자신의 자리에서 내려올 줄도 아는 이 시대 참 리더 Paul Schwarzenbeck 은 아직도 많은 선수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