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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7 00:18

백제 멸망 당시 백제가 동원한/동원할 수 있었던 병력은 어느정도였을까?

조회 수 15780 추천 수 114 댓글 49

1621c141775774dfcf42befbc10864d5.jpg 백제 멸망 당시 백제가 동원한/동원할 수 있었던 병력은 어느정도였을까?



과거엔, 그러니까 삼천궁녀 이야기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의자왕은 나라를 말아먹은 희대의 암군이라는 이미지가 지배적이던 시절엔, 이런 질문은 딱히 던질 필요도 없었음. 왜냐? 백제의 마지막 군대는 계백이 이끄는 5천명의 결사대가 끝이라고 여겨졌으니깐. 왜 병사가 5천명 뿐이었나? 그야 의자왕이 나라 다 말아먹었으니까 그런거겠지 뭐.


하지만 의자왕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모로 왜곡되었다는 것이 조금씩 알려지고, 나아가 오히려 당나라가 개입하기 직전까지만해도 백제가 신라를 몰아붙이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해당 궁금증에 대한 답을 다시 찾을 필요성이 생겨났음. 백제는 정말 나라가 망할 상황에서도 고작 5천명밖에 동원할 수 없었던 것일까? 만약 그랬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답은 당연하게도 5천명이 전부가 아니었음. 나머지 병력이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었냐고 묻는다면, ㅈㄴ 뻔한 사유와 조금 깊게 들여다봐야 할 사유가 하나씩 있음.


첫째는, 너무나 당연하게 백제가 동원할 수 있는 주력군 중 대다수는 신라군이 아니라 당군을 막으러 갔음. 솔직히 누가 당시 백제 왕이었어도 똑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13만 가량의 군대가 금강을 따라 바로 수도로 들이닥칠 판인데. 백제군과 당군이 충돌한 기록은 국내외의 여러 기록에서 확인됨.


이에 왕은 군사를 모아 웅진어귀를 막고 강가에 주둔시켰다. 소정방이 강 왼쪽 언덕으로 나와 산 위에 진을 치니 그들과 싸워서 아군이 크게 패하였다. 이때 당나라 군사는 조수가 밀려오는 기회를 타고 배를 잇대어 북을 치고 떠들면서 들어오고, 소정방은 보병과 기병을 거느리고 곧장 도성 30리 밖까지 와서 멈추었다. 우리 군사들이 모두 나가서 싸웠으나 다시 패배하여, 사망자가 1만여 명에 달하였다. 당나라 군사는 승세를 타고 성으로 육박하였다.


-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



소정방이 병사를 이끌어 성산(산둥반도 성산두)에서 바다를 건너니, 백제군이 웅진강 입구를 방어하고 있었다. 정방이 나아가 이를 깨뜨리니, 죽은 백제군이 수 천이었고, 남은 자들은 모두 도망갔다.


- 자치통감 권 200, 현경 5년(서기 660년) 8월



정방의 군대는 성산에서 바다를 건넜다. 백제는 웅진 입구를 지키고 있었는데, 정방이 공격하자 오랑캐(虜)가 크게 패했다. 군대가 다시 조류를 타고 배로 진도성(眞都城, 대체로 수도, 즉 사비성을 가리키는 말로 해석함)에 30리 가까이 진군하여 머물렀다. 오랑캐가 모든 무리를 다 동원하여 방어를 하였으나, 또 쳐부수어 1만여급의 머리를 베고 그 성을 탈취하였다.


- 신당서 동이열전 백제전 


웅진강, 즉 금강 입구에서 한 차례, 그리고 사비성 근방에서 한 차례 크게 충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첫번째 전투에서 수 천명이, 두번째 전투에서 약 1만명의 백제군이 사망한 것을 확인할 수 있음.


단순히 사망자의 수만 더해도 최소한 1만~2만 정도 규모의 백제군이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할 수 있을테고, 백제군이 전멸했다는 기록은 확인되지 않으니 포로로 잡힌 자, 살아남아 후퇴한 자, 아예 전장터를 이탈해 도망가버린 자까지 고려하면 이보다도 훨씬 많은 군대가 있었다고 추측해볼 수 있음. 다른 기록이 없는 이상 정확한 수까지 알기는 어렵겠지만 당군과의 전투에 투입된 백제군은 '2만 이상'이라고 해두면 큰 문제 없지 않을까.



이제 두번째 사유에 대해 말하자면 일단 백제 멸망 전후의 상황을 약간 이야기해야 하는데, 백제의 멸망 과정은 금강을 따라 빠르게 진격한 당군이 사비성과 웅진성을 그대로 포위하고, 의자왕의 항복을 받으면서 끝이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음.


그런데 이걸 뒤집어 말하면, 왕족은 당에 항복했지만 백제의 지방 세력은 거의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은채 온전히 남아있었다는 뜻이 됨. "왕이 항복했으면 끝난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지만, 고대 국가가 현대처럼 안정적인 정부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여러 부족들이 연합하면서 국가의 형태로 발전한 것이 고대 국가의 본질이기 때문에 지방 세력들은 중앙 왕족과 협력하기도 하고, 때로는 대립하기도 하는 존재였음.


그러니까, 약간 상상을 더하자면 당시 백제의 지방 귀족들은 "아니 의자왕이 항복한건 항복한거고, 우리는 당나라 니들 말 들을 생각 없음." 같은 태도였을 가능성이 높음. 소위 백제 부흥운동이라 불리는 움직임도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라기보단 귀족들이 자신들의 영토와 권력을 당나라에 빼앗기기 싫어서 저항한 것에 가깝다고 생각됨. 그러니까 부흥군 내부에서 권력다툼 일어나서 자멸한거 아니겠어?


지방 세력이 온전하게 남아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확인됨.


왕자 부여충승(扶餘忠勝)·충지(忠志) 등이 부여풍의 군사를 거느리고 왜국 군사들과 함께 항복하고, 지수신(遲受信)이 혼자 남아 임존성(任存城)에서 버티며 항복하지 않았다. 처음에 흑치상지(黑齒常之)가 도망하여 흩어진 무리들을 모으니, 열흘 사이에 따르는 자가 3만여 명이었다. 소정방이 이들을 공격하니 상지가 이들과 싸워서 승리하고, 다시 2백여 성을 빼앗으니 정방이 이길 수 없었다.


-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



소정방(蘇定方)이 백제(百濟)를 평정하니, 흑치상지는 휘하의 무리를 이끌고 항복하였는데, 소정방은 늙은 왕을 가두고 병사를 풀어 크게 약탈하였다. 흑치상지는 이를 두려워하여 주위의 추장(酋長) 10여 인과 함께 달아났고, 도망친 이들을 불러 모아 임존산(任存山)에 의거하여 스스로 굳게 지켰다. 열흘이 되지 않아 돌아온 자가 3만이 되었다. 소정방은 병사를 이끌고 흑치상지를 공격하였지만, 이기지 못하니 마침내 200여 성을 회복하였다.


- 삼국사기 흑치상지 열전


백강전투에서 왜국의 대규모 지원군마저 패배한 이후의 상황임. 보다시피 흑치상지가 병력을 모으니 불과 열흘만에 무려 3만에 달하는 병력이 모여들었다고 적혀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이들은 소정방의 군대와 싸워 승리하기까지 함. 


위에서 이야기했지만, 소정방은 방어진을 구축하고 있는 백제군을 연이어 박살내고 의자왕의 항복까지 받아낸 인물임. 한국인 입장에서는 좀 언짢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무능한 장수는 아니라는 말이지. 그런 소정방을 상대로 전과를 올렸다는 것은 이렇게 모인 3만의 병력이 그저 변변찮은 농민 무리는 아니었다는 방증이기도 함.


단기간에 대규모의 병력이 동원되고, 그 병력의 전투력도 대단히 우수하다는 점을 미루어보면 이들은 당에게 마지막까지 저항한 백제의 지방 세력이었다는 추측이 가능함. 흑치상지 열전에서는 추장 10명이 흑치상지와 함께 했다고 적혀있는데, 어쩌면 이것이 지방 귀족들을 일컫는 표현은 아니었을까?


흑치상지가 2백여 성을 회복했다는 부분도 꽤 재밌는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면 구당서에 따르면 백제가 가지고 있던 성이 딱 2백개이기 때문임.


그 나라(백제)는 본래 5부()로 나뉘어져 모두 37군(), 2백성()에 호구는 76만이었다


- 구당서 동이열전 백제전


그러니까 흑치상지가 2백여 성을 빼앗았다는 기록을 있는 그대로 믿는다면, 백제 부흥군은 잠시나마 백제의 전 지역을 수복했다는 결론에 다다름. 물론 이건 약간 과장이 섞인 기록이라고 봐야겠지만, 적어도 흑치상지에 동조하는 움직임이 백제 전 지역에서 일어났다고 말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음. 반복해서 말하지만, 당의 지배에 저항하는 지방 세력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겠지.



본문이랑 별개로 흑치상지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흑치(黑齒)라는 성씨는 흑치라고 불리던 지역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겨짐. 문제는 가끔 "흑치 = 검은 이빨" 이라고 번역한 다음 백제가 중국 남부나 동남아시아 일대도 지배하고 있었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인데, 삼국시대에 지명은 한자로 음차하는 경우도 엄청 많아서 단순하게 결론을 내리면 곤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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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EST [레벨:16]NaBi 2020.03.27 09:45
    박준표 꼭 그렇진않음.
    일단 당나라 끌어들인것 자체가 외교적 활동이고 백제침공시 김유신의 5만 신리군도 꽤 잘 싸움.

    무엇보다 백제 멸망 이후 당나라에서 요동지역과 백제지역 두갈래로 대대적인 고구려 침공할때 개박살나고 고립당해있을때 그 유명한 김유신의 구출작전으로 당나라군 살아나오는 등 큰역할해줬음ㅋㅋ
    고구려 입장에선 보급작살내고 전멸시키기만하면 되는건데 김유신이 뜬금포 나타나서 보급해주고 후퇴시키니 뒛목 잡았겠지만....
  • BEST [레벨:25]선정인 2020.03.27 01:09
    흑치 성씨는 부여씨에서 갈라져 나온거 같음
    본디 부여씨였으나 흑치 지역을 하사 받고
    성씨를 고쳤다 이거 같기도함

    멸망할 당시에 옛 마한지역을 완전 복속 시킨게
    아니라 동진강이나 영산강 전남 일대 세력들을
    회유해서 자치권을 인정하는 형태였기에
    지방세력은 비교적 온전히 남아있던거 같음
  • BEST [레벨:25]연구자 2020.03.27 13:03
    NaBi 백제 멸망 불과 몇년전에 고구려-백제 연합군한테 신라는 김유신이 건재함에도 불구하고 30개 성을 내주면서 대패했음. 무열왕 기록보면 당나라 원병없이는 이 상황을 타개할수없다는 절망적인 분위기도 있음. 물론 백제멸망 이후 신라가 용전분투한건맞는데 백제 멸망 직전까지도 신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어서 당군 개입은 신라의 목숨줄과도 같았다고 봄. 당나라빨이라는 얘기도 과장이 아니란거지.
  • BEST [레벨:3]나메크성인 2020.03.27 02:27
    흑치상지가 그럼 검니상지일수도 있음? 얘네 성이 좀 패드립이네 잘싸운게 이해가 가세
  • BEST [레벨:25]선정인 2020.03.27 01:09
    흑치 성씨는 부여씨에서 갈라져 나온거 같음
    본디 부여씨였으나 흑치 지역을 하사 받고
    성씨를 고쳤다 이거 같기도함

    멸망할 당시에 옛 마한지역을 완전 복속 시킨게
    아니라 동진강이나 영산강 전남 일대 세력들을
    회유해서 자치권을 인정하는 형태였기에
    지방세력은 비교적 온전히 남아있던거 같음
  • BEST [레벨:3]나메크성인 2020.03.27 02:27
    흑치상지가 그럼 검니상지일수도 있음? 얘네 성이 좀 패드립이네 잘싸운게 이해가 가세
  • [레벨:13]월월멍멍컹컹 2020.03.27 12:58
    나메크성인 아니 아예 치아랑은 무관하단얘기임.
  • [레벨:3]나메크성인 2020.03.27 17:58
    월월멍멍컹컹 그냥 음독이 아니라 훈독일수도 있대서 훈독 해봤음ㅋㅋㅋ
  • [레벨:8]박준표 2020.03.27 08:43
    신라는 진짜 당나라빨로 통일한거네
  • BEST [레벨:16]NaBi 2020.03.27 09:45
    박준표 꼭 그렇진않음.
    일단 당나라 끌어들인것 자체가 외교적 활동이고 백제침공시 김유신의 5만 신리군도 꽤 잘 싸움.

    무엇보다 백제 멸망 이후 당나라에서 요동지역과 백제지역 두갈래로 대대적인 고구려 침공할때 개박살나고 고립당해있을때 그 유명한 김유신의 구출작전으로 당나라군 살아나오는 등 큰역할해줬음ㅋㅋ
    고구려 입장에선 보급작살내고 전멸시키기만하면 되는건데 김유신이 뜬금포 나타나서 보급해주고 후퇴시키니 뒛목 잡았겠지만....
  • BEST [레벨:25]연구자 2020.03.27 13:03
    NaBi 백제 멸망 불과 몇년전에 고구려-백제 연합군한테 신라는 김유신이 건재함에도 불구하고 30개 성을 내주면서 대패했음. 무열왕 기록보면 당나라 원병없이는 이 상황을 타개할수없다는 절망적인 분위기도 있음. 물론 백제멸망 이후 신라가 용전분투한건맞는데 백제 멸망 직전까지도 신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어서 당군 개입은 신라의 목숨줄과도 같았다고 봄. 당나라빨이라는 얘기도 과장이 아니란거지.
  • [레벨:5]가늘고긴물건 2020.03.27 13:07
    연구자 애초에 예식진이 의자왕 배신한것도 사비성 앞에 당나라 대군을 보고 항복한거니까
  • [레벨:4]신서육이 2020.03.27 13:27
    NaBi 김유신 기록 자체가 신빙성이 좀...
  • [레벨:16]doshirak 2020.03.27 12:47
    박준표 백제 고구려 연계가 나당 연계보다 좋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ㅎㅎ 어찌됬건 신라도 나당전쟁을 이겼으니까요
  • [레벨:13]ASRome 2020.03.27 12:48
    박준표 반대로 보면 가장 당나라 빨 받기 힘든 나라가 결국 당나라 빨로 통일시킨거임
    백제나 고구려가 정복에 대한 확고한 의지만 있었으면 신라는 진작에 망했을거임
    백제는 일본하고도 친하게 지냈던 나라니 신라는 등 뒤에 적을 둔 상황에서 백제랑 전쟁한거

    통일 가능성만 따져보면 3국 중에서 신라가 제일 불리한 상황이었지
  • [레벨:23]레미르 2020.03.27 13:32
    ASRome 원교근공이라 당나라빨 받기 좋았음.
    중원왕조 입장에서 고구려는 무조건 적국이라서
    적의 적 버프 받음.
  • [레벨:2]ㅇ!ㅇㄱㅁㄱㅇ 2020.03.27 12:49
    박준표 당시 신라 외교력은 한반도 역사상 최고라고 봐야.. 결국엔 당나라까지 영리하게 이용했음.
  • [레벨:31]살라흐앗딘 2020.03.27 12:58
    박준표 이후 당나라 다시 몰아낸걸 보면 전부 당나라빨은 아님
  • [레벨:3]반성합니다 2020.03.27 13:08
    살라흐앗딘 토번때문에밀어낸거아닌가
  • [레벨:5]Puig 2020.03.27 13:10
    살라흐앗딘 만주에서 일어난 중원국가 제외하고, 만주,한반도 정복한 나라는 있어도 지배를 유지한 국가는 없음.
  • [레벨:24]달리는자동차. 2020.03.27 13:04
    박준표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데에 이용하긴 했지만 나당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니 당나라빨이라 할 수도 없지
  • [레벨:6]ksw1212 2020.03.27 15:03
    달리는자동차. 나당전쟁 이긴건 맞지만 그당시 상황이 당나라 한반도에서 발뺄떄였음 당시 토번 가르친링이 당나라 개박살내고있을때여서 신라하고 전선을 유지할수 있는 여유가 없었음. 나당전쟁승리 1등공신은 토번이라 볼수있음 백제 고구려 하고 전쟁할때는 고구려빨이었고 나당전쟁때는 토번빨이었음
  • [레벨:5]가늘고긴물건 2020.03.27 13:04
    박준표 그냥 당 대 백제
    당 대 고구려 전쟁이였지 신라는 종속변수
  • [레벨:35]Su-47 2020.03.27 10:41
    백제출신 왕족이나 장수들 삼국지에서도 나오는 낙양의 북망산에 묻힌 사람들 많더만
    본문의 흑치상지도 그렇고, 의자왕도 이곳에 묻혔다함
  • [레벨:4]지여닌 2020.03.27 12:50
    Su-47 자기들이 멸망시킨 망국의 장군이나 왕족은 북망산에 묻히게 했다고 함
  • [레벨:12]그치만오니쨩 2020.03.27 10:50
    의자왕이 자신의 형제들을 높은직위에 대거 등용한걸로 아는데 왕권을 강화하면서 다른 중앙 귀족과 지방 세력을 지나치게 억누른게 백제 멸망의 원인이 아닌가싶음.
    한창 신라 두들겨 팰때는 억제가 가능했지만 당나라가 오면서 내부 불만이 터져나왔고 결국 의자왕이 배신당한게 아닐까
  • [레벨:32]내사랑무리뉴♥ 2020.03.27 12:49
    그치만오니쨩 그냥 버린듯 ㅋㅋ

    지원 요청 쌩까고 뭐 ㅋㅋㅋ
  • [레벨:20]mr기본기 2020.03.27 12:49
    그치만오니쨩 신라 제1요충지라고 볼 수 있는 대야성도 넘어섰겠다, 왕권강화를 위한 시기로는 적절했다고 보는데 당이라는 변수가 끼어든거지.
  • [레벨:23]레미르 2020.03.27 13:35
    그치만오니쨩 뱀도 허물 벗을때 제일 약하듯 한단계 발전을 위한 혼란때 당한거지.
  • [레벨:27]Kugel 2020.03.27 12:47
    당시 의자왕이 지방 세력과 갈등이 있었다는 걸 본거 같긴함
    한국도 사병이 조선와서 없어진거니깐 그 당시 의자왕이랑 사이 안좋던 지방 귀족들 군대가 있을수는 있다고봄
  • [레벨:27]햄버거킹 2020.03.27 12:47
    예전에 디씨에서 어떤놈이 김유신 쌀배달이나 했단 글생각나네 ㅋㅋ
  • [레벨:7]Ml11 2020.03.27 12:48
    ㅊㅊ
  • [레벨:20]즐건하루 2020.03.27 12:49
    영화 황산벌에서 부여씨 왕가랑 지방 세력과의 갈등을 아주 이해가 쏙쏙 잘되게 치는 대사가 있었잖슴.

    "그 나라가 우덜 나란가? 너거 부여씨(백제 왕실의 성씨)들 나라제."
    "왕자들 41명을 죄다 좌평에 앉혀 놓은 뒤로는 우덜 나라는 없어져부렀제!"
  • [레벨:10]올바른인성 2020.03.27 12:49
    수도 뚫린게 치명타였지, 백제 망하고도 몇년은 더 저항세력이 있던걸 보면 지방세력들도 의자왕 좆되봐라 이런식으로 꼬장부리다가 진짜 망하는거 보고 당황하지 않았을까
  • [레벨:24]아베미카코 2020.03.27 12:49
    그나저나 저기 평양?쪽에 평야 꽤 넓네.저 아까운 땅 시발
  • [레벨:25]더마린 2020.03.27 12:55
    아베미카코 저기가 해주 평야 아님??? 나주 평야랑 같이 우리나라 곡창지대 투탑
  • [레벨:26]죄와벌 2020.03.27 12:54
    사실 백제 수도가 털리거나 왕이 전사한적은 있었지만 나라는 멀쩡했기 때문에
    지방 호족들이 'ㅋㅋ 의자왕 너 좆되봐라' 하면서 방치한것도 있음.

    근데 경상도 촌놈들하고 떼놈들이 나라 자체를 명망시킬줄은 몰랐겠지.
  • [레벨:23]아윈 2020.03.27 12:56
    백제를 삼국지의 촉에 비유하면 편함.
    얘네들 원래 건국 발원지가 한강유역+충청지방이었고 수도도 한성이었음. 근데 고구려 침략으로 털리고 지방호족들의 입김에 쎈 전라도 지방으로 내려앉은거임.
    즉, 삼국지로 치면 촉이 형주를 잃고 형주인물과 함께 촉으로 도망왔다고 생각하면 됨.
    거기서 자신을 배신하고 형주를 홀로 차지한 오나라와 철저히 싸워 무창정도까지 밀고 갔는데 오나라가 위나라와 손잡고 촉 때려잡아 죽였다고 생각하면,
    익주사람들 입장에선 형주유민들이 세운 촉한따위 관심없고 항복하기도 쉽지, 그거랑 비슷하게 백제도 돌아갔다고 보면 돼.

    무왕시절에도 22담로니 뭐니 하면서 지방호족들에게 권력을 주긴 했으되 의자왕도 처음엔 그리 했을지 몰라도 치세가 길어지면서 갈등도 깊어졌겠지 호족들하고.
  • [레벨:19]아이비 2020.03.27 14:17
    아윈 백제중심지는 단한번도 전라도인적이 없었는데요.. 망국직전에 영향력이 커지긴했겠지만
  • [레벨:25]연구자 2020.03.27 12:58
    기록상 백제가 최대로 가용했던 대외원정군이 4만명(무왕)인걸보면 국가적 위기 상황에 최대로 동원할 수 있는 군사는 더 많지 않았을까 생각됨. 한편으로 백제 진공 시 신라가 5만명을 동원했다는 기록이 더 미스터리함. 그전까지 이런 대병력을 모은 기록이 없는것같아서.. 영혼까지 끌어모은 한방 병력인지. 백제 입장에서도 뭔 헛소리냐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음.
  • [레벨:2]행복한젖닌 2020.03.27 13:04
    연구자 원정군은 수비병력은 남겨두고 총력전 아닌이상 어느정도 여유를 남겨놓고 가는게 일반적인걸 생각하면 수비를 최대한 끌어모으면 10만도 가능했을거라 생각됨 백제가 곡창지대여서 인구 부양력 감안.. 신라는 영혼까지 끌어모았을거로 추측 단순 공격이 아닌 총력전이었으니까..
  • [레벨:17]배돈 2020.03.27 12:58
    백제부흥운동 보면 몇만명씩 모이는게 이해가 됨. 백제랑 고구려는 끝까지 내부분열을 정리못하고 망함. 개인적으로는 백제가 더 심했다고 생각함. 애초에 계백 5천 군대도 지방에서 병사가 모일동안 버티고 있으라였고... 그런데 웅진성주가 배신 엌ㅋ
  • [레벨:26]여름의노래 2020.03.27 13:01
    임진왜란때랑 비슷하게 초전에 중앙군이 박살난 상황인데 의자왕은 선조랑 다르게 수도를 지키는걸 택한거 같음 근데 문제는 지방군이 모이기도 전에 내부 반란으로 웅진성이 함락되면서 걍 망해버린거지
  • [레벨:5]가늘고긴물건 2020.03.27 13:09
    백제 멸망의 알파와 오메가인 당나라를 빼면 왜곡만 남을뿐
  • [레벨:23]Rollcoo 2020.03.27 13:10
    백제는 지방호족간의 갈등이 심했던거에 비해 신라는 나라전체가 단결하는 분위기였던것도 컸지
  • [레벨:22]뷰티풀싸커 2020.03.27 13:14
    https://youtu.be/z2YurODBOwI
    이거에 대해선 어캐생각함. 성주가 의자왕체포하고 당에 항복해서 멸망했다는내용
  • [레벨:10]올바른인성 2020.03.27 13:18
    뷰티풀싸커 사료가 더 많이 발견되지 않는 선에서 합리적 의심정도는 해볼 가설임
  • [레벨:7]1호기 2020.03.27 13:15
    백제 공격 때 삼국 중에 가장 열세인 신라가 총동원한게 5만이었지. 백제도 총동원했으면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었을거임. 다만 대응할 시간도 없이 선빵을 당해서 멸망한거고... 백제 부흥 운동 전성기 시절 생각해보면 어림잡을 수 있을듯
  • [레벨:21]신짜오_원챔유저 2020.03.27 13:18
    아냐 내가 역사스페셜봤는데
    백제는 크게 4~5 큰호족이 있고
    전시때 백제왕은 4~5 호족중 하나의 호족으로
    이동해 수성을하고 나머지 호족들이 배후를
    치는식으로 쌈싸먹기식 방어를 했다고한다.
    수비하려고 부여로 왔는데 부여호족 군사좌평의
    배신으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끝이나고
    백제 군사좌평은 당나라가서 대장군이된다.
  • [레벨:7]포도먹는용병 2020.03.27 13:19
    신짜오_원챔유저 군사좌평 x 병관좌평 o
  • [레벨:3]재료공학도 2020.03.27 13:21
    백제 멸망 당시 백제가 동원한/동원할 수 있었던 병력은 어느정도였을까? ㅇㄷ
  • [레벨:13]ㅇㄸㅉㅆㅇ 2020.03.27 13:29
    백제 멸망 당시 백제가 동원한/동원할 수 있었던 병력은 어느정도였을까?
    ㅇㄷ
  • [레벨:5]아리엔나 2020.03.27 13:44
    역사학도로써 좋은 글 보고갑니다 펨코형님.

    좋은 의견을 보고 개인적으로 백제덕후인 저로써는 상당히 흥미로운 글이네요.
    조금 의견을 보태자면 저는 개인적으로 흑치라는 성씨를 백제 왕족에서 이탈한(신라로 치면 6두품과 비슷한 느낌의)
    변방왕족, 즉 고려 말 이성계의 입지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물론 대학에서 가르쳐주신 교수님의 이론이긴 한데 아직 논문이나 이런걸 심도깊게 살펴보지 않아 개인적 사료견해보다는 그 교수님의 말이 좀 더 저에게 닿아있는 느낌)입니다.

    여하튼 백제 말, 해동증자인 의자왕의 등극으로 다시 한번이라는 슬로건의 기치를 건 백제가 중흥의 길에서 더 나아가지못하고 거기서 명맥이 끊겨버려 너무 아쉽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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