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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4 22:50

역사이야기)로마의 종언,콘스탄티노플 함락-1

조회 수 14017 추천 수 109 댓글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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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0년 초,동로마는 가냘픈 숨을 들이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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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베이국(당시 오스만의 국호)이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한 채 그나마 남은 아나톨리아영토마저 뺐어가며 동로마를 압박하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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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에는 이슬람을 막아주던 든든한 방패였던 동로마군은 이제는 1만도 되지않는 약체가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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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그와중에 1451년 젊은 루키 메흐메트 2세가 오스만 술탄에 즉위한다.
그는 세계정복의 야망이 있는 사내였고,동로마 정벌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정복의 야망 외에도 그가 동로마를 정벌할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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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는 분할전 로마를 이은 진정한 로마였기 때문이다.
서로마를 박살낸 오도아케르조차도 동로마 황제에게 깎듯이 '로마황제'라 서한을 보내며 자신이 획득한 서로마의 칭호와 명목주권을 모두 넘겼다.

그래서 동로마를 정복한다는 것은 로마황제의 칭호를 얻을수 있다는 거였기 때문에 메흐메트 2세도 당연히 이에 관심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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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렇게 동로마 정벌을 준비하던 그에게는 난관이 하나 있었다.

바로 콘스탄티노플 3중성벽이었다.
테오도시우스 2세가 세운 이 성벽은 2m-9m-12m 정도의 높이에다가 두께도 4m이상이었고,내진설비에  96개의 창고겸 사격공간인 탑까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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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주요방어선인 외벽은 엄청난 방비가 되있었고,12m정도의 방어탑까지 설치되어 가히 난공불락이란 말이 아깝지 않은 방어선이었다.
동로마는 그것도 모자랐는지 내벽 수십미터 앞에다 20m깊이의 해자까지 설치했고 그앞에 얼추 2m쯤 되는 방벽까지 구비해놓았다.
심지어 방벽과 외벽은 엇갈리게 설치해서 방벽 뜷으면 공격측에겐 공성장비가 사실상 금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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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오스만군이 이 성벽을 뜷으려면 배를타고 해자를 화살맞으며 건너 1차방어선 방벽을 오르고 또 화살맞으며 내달린 후에 9m짜리 외벽을 동로마 주력군의 저항을 막으며 맨몸으로 넘고 백병전이랑 전투탑 소탕한 후,12m짜리 방벽을 또 화살맞으며 넘어 96개정도의 탑을 전부 제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불가능한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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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해안쪽은 성벽이 하나밖에 없었던데다가 그나마 남쪽과 동쪽은 강한 해류때문에 공성불가한 동네지만,북쪽은 해류마저 없었다.
그래서 잘 컨트롤해서 금각만 북쪽에 폭탄드랍만 하면 이길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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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걸 베네치아가 전에 이미 써먹었단 것이었고,동로마도 빠가사리가 아닌이상 그곳이 문제임을 이미 알고있었다.
당연히 금각만 부근에 철쇄랑 온갖 장애물을 설치할게 분명했다.
그와중에 금각만 맞은편에도 동로마 요새가 있어 금각만쪽 드랍은 그것까지 신경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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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당시 오스만 정계는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었는데,예니체리에 기독교도 징집가부를 놓고 다투던 이들은 콘스탄티노플 점령건에서도 분열되어 다투었다.
심지어 이와중에 전대 술탄의 총신이었던 재상 할릴 파샤마저 콘스탄티노플 함락 반대에 선다.
메흐메트 2세에게는 초장에  정복안이 거부당할수도 있던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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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은 케밥의 음모다!

그리고 동로마도 상황이 복잡했는데,윗집에선 세르비아가 제국선포하며 동로마 서부를 가져갔고 터키쪽에선 혐네치아 놈들이 박살낸 동로마 재건을 위해 국방비를 낮췄다가 남은 아나톨리아마저 오스만에게 빼았겼으며,14세기에는 흑사병까지 정통으로 직격당해 콘스탄티노플 인구 절반이 사망했다.
한마디로 좆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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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당장 돈내놔라!

이렇게 한쪽은 내분으로 한쪽은 국가붕괴로 둘다 멈춰있던 이때,동로마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가 치명적 명분을 오스만에게 준다.

오스만에서 쫓겨난 오르한 왕자를 당시 동로마가 관리하고 있었는데,당시 재상 노타라스와 그의 가문의 위세를 꺾기 위해 오스만에게 오르한 우리가 맡고있으니 탁아비 내라고 도발한 것이다.
성공만 하면 황제권한도 높이고 오스만 기세도 꺾을수 있는 수였다.


Gentile_Bellini_003.jpg 역사이야기)로마의 종언,콘스탄티노플 함락-1
ㅋㅋㅋ븅신 명분을 스스로 주네

하지만 메흐메트2세는 이걸 명분으로 당시 반대파를 아닥시키고 오히려 반대파마저 동로마에게 빡치게 만들었고,
반대파였던 재상 할릴 파샤마저 동로마 사신에게 사자후를 날리며 사실상의 선전포고를 한다.
이 사자후는 동로마 역사학자 두캇..아니 두카스에 의해 기록되어 현재까지 알려지고 있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오오,멍청하고 어리석은 로마놈들아,네놈들의 교활함은 진작부터 알았다.지난 술탄(무라트 2세)께서는 니놈들에게 관용을 베푸셨겠지만,지금 술탄께서는 생각이 다르시다.네놈들은 지난 술탄께서 너희들과 체결하신 화평의 먹물이 아직 마르지도 않았는데 우리를 헛된 망상으로 겁줄수 있을거라 생각하나 본데,우리는 생각도 힘도 없는 어린애가 아니다.네놈들이 뭔가 할수있는게 있다면 한번 해보라.트라키아에서 오르한을 술탄으로 옹립해보든지,도나우강 너머 헝가리놈들을 부르든지,뭐든지 해보란 말이다.다만 이것만 명심하거라.이런짓을 한다고 해서 너희는 고토를 회복하는게 아니라 지금 남은것도 모두 잃게될 것이다."


(가볼만한곳)_루멜리 히사르_TT이지현(1).jpg 역사이야기)로마의 종언,콘스탄티노플 함락-1
이런 개쩌는 사자후 후,오스만은 1452년에 콘스탄티노플 북쪽에 새 요새인 '루멜리 히사르'를 만든다.
이것으로,콘스탄티노플은 북쪽 식민지 제노바인들의 지원이나 다른 세력의 지원을 받을 수 없게되고 사실상 고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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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중에 사태를 파악한 콘스탄티노스 11세는 프랑스나 신롬등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모두 거절당한다.결국 혼자 싸울수밖에 없게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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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중,콘스탄티노스 11세는 오스만 15만 대군이 진군중이란 첩보를 받는다.
이제 본격적으로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이 개시될 것이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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