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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1 00:09

충남 당진 사람들이 견훤에게 제사 지낸 이유

조회 수 26935 추천 수 100 댓글 67
연꽃 명소로 거듭난 당진 합덕제 | 연합뉴스 충남 당진 사람들이 견훤에게 제사 지낸 이유

이번 글에서는 충남 당진의 합덕 방죽과 관련하여 견훤의 경제시책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보고자 해

합덕읍 합덕방죽 전설(1) - 당진신문 충남 당진 사람들이 견훤에게 제사 지낸 이유

지금은 비록 예당저수지의 건설로 논으로 개간되어 제방만 남아있는 합덕 방죽이지만,

합덕 방죽은 조선시대에도 3대 방죽 중 그 명성을 날렸던 곳으로,

당진 주민들에게 이 방죽의 건설은 견훤의 업적으로 오랜시간 전해졌어

주관적으로 뽑은 서인석옹 베스트 캐릭터들 : 네이버 블로그 충남 당진 사람들이 견훤에게 제사 지낸 이유

당진에 전해지는 전설에 따르면 견훤은 이곳에 둔전을 개간하며 1만 2000명의 병력과 말 6000필을 주둔시켰다고 하는데,

이 병력의 유지를 위하여 견훤은 방죽을 건설하였고,

이에 감사한 당진 사람들은 무려 1930년대까지,

견훤에게 매년 음력 7월 진일을 택하여 감사제전을 거행했어

* 이 합덕 방죽의 건설 시기와 관련하여 후백제 건국 이전 즉 원삼국시대에 이미 건설되었다는 이설도 있지만, 어쨋든 견훤이 이곳에서 둔전을 하였던 것만은 분명하며, 이러한 둔전정책에 대한 우호적인 민심은 견훤이 성당산성에서 활을 쏘자 왕건이 주둔하고 있던 예산 신안면까지 날아갔다는 전설로도 전해져

서인석 - 우만위키 충남 당진 사람들이 견훤에게 제사 지낸 이유

견훤의 둔전은 이외에도 전라남도 나주시 등 국방상의 요충지에서 시행된 흔적들이 발견되는데,

견훤이 조조가 처음 시행하였던 '둔전'과 같은 제도를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용맹하고 뛰어난 군인왕 이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내치에 있어서도 상당한 경제적 안목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줘
(* 이러한 둔전은 최승우와 같은 당나라 유학경험이 있는 관료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이뤄진 경제시책으로 추정되며 동란의 시기에 효과적인 군대 운영과 국고 확보를 위한 방책인 동시에 민심을 얻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을게 분명하지)

<삼국사기>는 견훤을 '천하의 악당'으로 규정하며 그의 패배를 사필귀정으로 비난하지만,

이러한 견훤에 대한 비난도 잘 보면 그의 신라왕 살해 등에 대한 '도덕적 비난'에 그칠 뿐,

궁예와 같이 백성들을 도탄에 빠지게 했다는 내정의 실정에 대한 비난은 없는데,

<동사강목>의 저자 안정복은 견훤의 후백제가 신라는 물론 고려보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였다고 기록하였어
(* 안정복은 견훤을 도적의 무리 중 하나로 평가하였음에도!)

현대의 후삼국 연구자들에게도 견훤의 경제시책은 소략한 자료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높이 평가를 받는데,

촌락 공동체를 뛰쳐나와 미아처럼 방황하는 유민들을 수습하여 사회안정과 더불어 경제기반의 확대에 힘썼으며,

둔전이나 관계를 통한 농업경제의 증진에 비상하게 힘쓴 군주로 평가받기도 해

* 이상으로 합덕 방죽과 관련한 견훤과 경제 이야기를 마칩니다, 글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 BEST [레벨:3]짱승원 2020.08.20 22:15
    글 잘 봤습니다.

    첨언하자면 견훤이 둔전을 선호한 이유에는 다른 해석도 있습니다.

    견훤이 오다련군을 비롯한 나주호족들과 사이가 안좋고 강주의 대호족들과도 전투를 치를만큼 호족을 상대로 강경책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보급에 있어서 현지조달이 쉽지않아 둔전을 선호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https://m.fmkorea.com/3044101055 이 글 참고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BEST [레벨:35]악바르 2020.08.20 22:26
    짱승원 감사합니다. 제가 미쳐 다루지 못한 부분을 다뤄주셔서 생각의 지평을 넓히게 해주는 좋은 글이네요 미갤이 이래서 좋다는ㅎㅎ
  • BEST [레벨:3]짱승원 2020.08.20 22:37
    악바르 결정적으로 견훤이 901년 대야성전투에서 신라 김웅렴에게 패배한 후 나주호족들의 반란을 무력으로 진압했다는 기록이 있어요

    그리고 이로 인해 오다련군을 위시한 나주호족들이 궁예와 연합하여 903년 나주를 점령했다고 생각됩니다. 이것도 제가 나주공방전 시리즈에서 다룬적 있어요 ㅋㅋ

    견훤은 어찌보면 상당히 머리가 좋다고 할 수 있죠

    호족을 상대로 세력이 약한 창업 초기엔 온건책, 이후엔 강경책을 펼친 것을 보면 끝까지 도적 마인드를 버리지 못한 궁예와 비교도 되고요
  • [레벨:14]호랑메랑 2020.08.21 01:41
    악바르 ㅋㅋㅋㅋㅋ 밭에서 소금날 뻔
  • [레벨:36]바빌로니아 2020.08.21 00:20
    견훤은 보면 항우처럼 사기캐임과 동시에 롱런은 못할 전형적인 단명왕조 군주인거 같음
    옛 백제땅에 가서 후백제를 세워 백제계열 지지기반을 얻으려한건 좋았지만 자신은 백제랑 연이 없는 상주출신인점,
    경애왕을 참살하고 백제의 한을 풀었다는 명분으로 무리수를 뒀다는 점에서 신라계 호족들의 지지기반이 있던 궁예-왕건 세력에 비해 한계가 명확했다고 생각..
    거기다가 결정적으로 후계자 지정 문제까지
  • [레벨:3]짱승원 2020.08.21 00:24
    바빌로니아 에이 궁예 기반이 신라계는 아니지 ㅋㅋ 건국초는 패서(고구려계)고 초중반부턴 청주(백제계)와 패서의 세력다툼인데 ㅋㅋ

    다른 말은 다 맞다고 생각함
  • [레벨:36]바빌로니아 2020.08.21 00:25
    짱승원 기반이 '있던' 에서 오해를 한것 같은데 전체 기반이 신라계라는 말이 아님;
    최소한 후고구려는 명주호족 빽이 있어서 이걸 이야기 한거
  • [레벨:3]짱승원 2020.08.21 00:26
    바빌로니아 아 내가 오해했네 ㅈㅅㅈㅅ
  • [레벨:20]두두두두둥 2020.08.21 00:27
    수달마니아형님 ..
  • [레벨:20]보비솃 2020.08.21 00:40
    견훤형님 발성 좆댐
  • [레벨:19]삼겹 2020.08.21 00:48
    햅떡!!!
  • [레벨:23]장진수 2020.08.21 06:48
    관계 -> 관개
  • [레벨:35]악바르 2020.08.21 09:27
    장진수 ㅈㅅ...
  • [레벨:5]여유증 2020.08.21 10:24
    견훤이 태어난 지역은 지금 너무 시골인데
    그때도 이런 시골이였을까 개천에서 용 난 수준임
  • [레벨:3]짱승원 2020.08.21 14:27
    여유증 경상도가 경주+상주임
    조선까지만 해도 대도시였음
  • [레벨:5]여유증 2020.08.21 15:04
    짱승원 지금 상주랑 그때 상주는 덩치가 다름
    옛날에는 상주 안에 문경이 있었음
    견훤 유적지 있는 동네는 문경시에 있는 가은읍임
    상주가 견훤 출생지란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림
  • [레벨:3]짱승원 2020.08.21 15:05
    여유증 ㅇㅇ 사벌주 가은현
    내말은 그때는 이런 시골이 아니란 소리임
  • [레벨:5]여유증 2020.08.21 15:11
    짱승원 가은 '현'인데 시골이 아니였음??
  • [레벨:11]마샤와곰 2020.08.21 23:21
    꿀잼추
  • [레벨:35]악바르 2020.08.22 17:27
    마샤와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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