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주요 전함들 가운데 하나였던 전 드레드노트급 전함들이 점차 노후화되어감에 따라 이를 대체할 새로운 전함의 필요성이 대두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정 속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이었다.
28.3cm 3연장포 2기를 주포로 무장한 도이칠란드급 장갑함은 총 3척이 건조되었으며 이 가운데 ‘Admiral Graf Spee'는 가장 마지막에 건조된 도이칠란드급 장갑함(1936년에 취역)이었다.

스페인 내전에도 참여한 바가 있었던 그라프 쉬페는 이후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통상파괴의 임무를 하달 받게 되었다. 당시 독일 해군은 연합군, 특히 영국 해군과의 전면전은 사실 상 힘들다고 보았고 이에 따라 통상파괴 전략을 택하였는데 여기에 그라프 쉬페도 동원되었던 것이다.
통상파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할당된 작전 해역이었던 적도 이남으로 내려간 그라프 쉬페는 곧 여러 성과를 올리기 시작했다. 브라질 근해에서 ‘클레멘트’ 호를 시작으로 ‘뉴튼비치’, ‘에쉴리’, 헌트맨‘ 등 여러 영국 상선들을 격침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 공격 받는 'Ashlea'와 이를 지켜보는 Graf Spee의 승조원들 / 출처 : Maritime Quest >
독일 함선이 예상과는 다른 전혀 엉뚱한 곳에서 출연해 자국의 상선들을 격침하기 시작하자 영국은 곧 추격대를 편성하기 시작했다. 곧 항공모함 ‘HMS Ark Royal’과 전함 ‘HMS Renown’ 등을 포함한 추격대가 편성되었고 이들은 곧장 그라프 쉬페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이때가 1939년 10월 중순이었다.
영국에서 추격대를 편성하여 그라프 쉬페를 추격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라프 쉬페는 이를 용의주도하게 따돌리며 계속해서 통상파괴 임무를 수행해 나가며 추가적인 성과들을 올렸다. 이는 12월 초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추격전도 12월에 들어서자 막바지에 이르게 되었다. 13일이 되어 영국 해군의 ‘HMS Exeter’, 'HMS Achilles', 'HMS Ajax'와 조우하게 되었던 것이다.

곧바로 3대 1의 교전이 발생하였고 교전 결과 연합군 함정들은 큰 피해를 입고 전투 구역을 이탈, 도주하였다. 그라프 쉬페의 승리로 끝난 것이다. 그러나 3대 1의 교전 속에서 그라프 쉬페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어 수리가 필요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본국인 독일까지는 거리가 너무 멀었고 결국 그라프 쉬페가 향한 곳은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 항구였다.


< 손상 입은 HMS Achilles의 모습 / 출처 : 제국전쟁박물관 >

< 손상 입은 Graf Spee의 모습 / 출처 : 제국전쟁박물관 >
< 몬테비데오 항구에 입항 중인 Graf Spee의 모습 / 출처 : British Movietone 유튜브 >
그러나 당시 우루과이는 중립국이었기 때문에 그라프 쉬페가 몬테비데오 항구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게다가 지난번 교전을 통해 그라프 쉬페의 위치를 파악한 영국 해군들도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시간은 그라프 쉬페의 편이 아니었던 것이다.
12월 17일, 결국 그라프 쉬페는 몬테비데오 항구를 떠나 인근 해안에서 자침을 결정했다. 덕분에 그라프 쉬페와 영국 함선들 간의 화끈한 함포전을 기대하고 항구로 몰려들었던 몬테비데오 시민들은 곧 엄청난 굉음의 폭발음과 함께 전소되어 침몰하는 그라프 쉬페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게 되었다.


< 자침한 Graf Spee의 근접 모습 / 출처 : 제국전쟁박물관 >
그라프 쉬페의 승무원들은 미리 함선에서 빠져나온 뒤여서 자침에 따른 인명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이후 종전 때까지 인근의 아르헨티나에 억류되어 있어야만 했다. 한편 그라프 쉬페의 함장은 함선의 자침을 지켜본 뒤 역시 아르헨티나로 이동, 이후 권총으로 자살하여 생을 마감하였다. 이후 그의 장례식이 부에노스 아이리스에서 성대하게 거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