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34
오늘의 주인공은
2차대전 기갑사를 아는 사람이면
티거, 4호 전차, 판터와 함께 떠올리는
2차대전 기갑 4천왕 중에 1좌를 차지한
T-34, 애칭 떼삼사 되시겠다
2차대전 직전의 혼돈 그 자체였던 1930년대
소련은 의외로 제대로 된 기갑체계가 잡히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 소련이 가진 물건 중 가장 성능이 좋았던게
쾌속전차라고 불리던 경전차 BT-7이 끝이었고
이녀석의 운용교리도
보병들과 함께 쾌속 진격
이라는 그냥 장갑차스러운 운용으로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물론 이것도 성능 자체는 나름 괜찮았던지라

이딴 고철이란 단어를 쓰기도 아까운 쓰레기가 굴러다니던
1938년 장고봉 사건과 1939년 할힌골 전투 레벨에서는
그야말로 상대를 압사시켜버릴 정도였지만
당장 할힌골 전투와 동시즌에 이루어졌던
스페인 내전의 경우
진짜 원숭이와 사람간의 대처법의 차이를 보여주는 교보재가 되어
독일산 37mm pak.36 포에 완벽하게 관광당하면서
소련의 전차 개발자들에게 큰 숙제를 안겨주어버렸다
새로운 전차를 개발할 것이냐? 기존 전차를 개량할 것이냐?
라는 문제에서
소련은 비범하게도 둘 다라는 선택지를 골라버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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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K 시제 다포탑 전차부터 시작해
KV-1으로 본격적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한
重전차 라인과

A-20

A-32
기존 BT-7 전차에서 화력과 장갑을 추가하는 방향으로 개발된
A-32/A-20 -> T-34 中전차 라인으로 갈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BT-7에 76mm 전차포를 얹었던 A-32를
주력 중전차로 할 예정이었으나
겨울전쟁에 투입해놓고 보니
이래도 부족하다!
라는 결론이 나와버려서 A-32는 한번 더 개수작업을 거쳐

기존 32 설계에 장갑을 증강시킨 A-34를 만들었고
이게 통과되면서 제식명 T-34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스탈린의 최측근이었던 그레고리 쿨리크 원수가
이 T-34에 대해서 굉장히 좋지않게 생각하면서
생산계획에 점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고

급기야 첫 생산 예정이었던 1940년
독일에서 3호전차 2대가 수입되었고
이 3호를 분석한 결과
T-34는 화력과 장갑을 제외한 엔진, 무전기, 편의성 등의
모든 소프트 스펙에서 밀리는 참상이 벌어졌다
이 결과에 신이 난 쿨리크 원수는 더더욱 이건 쓰레기라고 딴지를 걸어대고
T-34는 설계자였던 코시킨 기사가 과로사하는 불행까지 겹치면서
1940년 목표였던 600대 생산은 117대 생산으로 접어야했고
다음 대의 설계자였던 모로조프가 다시 설계를 수정하여
1941년에서야 겨우겨우 생산라인을 제대로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제작된 T-34/76은
전장 - 6.68m
전폭 - 3m
전고 - 2.45m
전비중량 - 26.5t
탑승인원 - 4명
(전차장, 포수, 조종수, 무전수)
엔진 - 12기통 수냉식 디젤엔진 V-2
최고출력 - 500hp
최고속도 - 55km/h
항속거리 - 400km
무장
41.5구경 76.2mm F-34 1문(77발)
7.62mm DT기관총 2정(2,898발)
장갑
전,측면 60도 피탄 경사장갑
라는 스펙으로 완성되었으며
경전차 기반이었던 만큼 무식할 정도로 생산성 높은 구조에 힘입어
독소전쟁 직전까지 1220대 생산, 960대 배치였던 상태였다
당시 3호, 4호전차 배치량이 2000대 가량이었던 걸 보면
정상적인 상황이었으면
독소전쟁 6개월간의 독일 기갑의 연전연승이 나올수가 없었을테지만
당시 소련군은 대숙청 사태로 인해
멀쩡히 기계화가 잘 이루어지던 육군이
지휘체계부터 시작해서 작전교리까지
싸그리 1차대전 수준으로 후퇴해버리는 대참사가 발생하는 바람에
독소전쟁 초반에 엄청난 피해를 입어야 했다
그러나
여기서 스탈린의 신의 한수가 떨어지니
남자란 남자는 모조리 군대에 집어넣어서
급조 예비군 사단을 몇백개를 뽑아내는 물량을 완성함과 동시에
"모든 군수 공업시설들을 우랄산맥 후방으로 옮겨라"
"그게 불가능할 시 그냥 점령당하는 시점까지 풀가동"
이라는 명령을 내렸던 것
그러니까
지금의 울산, 포항 공업지대를 수백km 밖으로 통째로 옮기란 소리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짓이었지만
최전방에서 이사를 포기하고 풀가동을 선택한 공장들은
급조 예비군 사단에게 장비를 공급해가면서
T-34 생산 공장을 필두로 한
대다수의 중공업 공장들이 대피할 시간을 버는데 성공했고
1942년 미국의 랜드리스 개시와 동시에
이사를 모두 마친 T-34 공장들이 일제히 분노의 질주를 시작
그 결과
1940년 117대
1941년 2996대
였던 생산량은
1942년 12527대
1943년 15821대
라는 그야말로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는 수치를 찍어버리며

독일군에게 미쳐 돌아가는 개떼러쉬를 보여주게 된다
사실 T-34는 초기 공세 당시 독일군내에서
이거 큰일이다는 경각심을 준 물건이었다
60도 경사장갑을 통해
단순계산상으로 표기대비 2배의 방어력을 얻고
그 결과 주력이었던 기존 3호, 4호 전차의 7,5cm 단포신이
그야말로 이빨도 안먹히는 말도 안되는 광경을 보여줬으며
7,5cm 단포신이 주력이었던 1941년 독일 입장에서
76mm 장포신 대전차포는 구축전차의 화력으로 보였다
거기에 무슨 약을 빨은건지 모르겠지만
기계적으로도 굉장히 단순해서 생산에 조작까지 용이하여
생산 및 배치도 겁나게 쉬워서
분명히 오기전에는 전차가 없다고 해서 진격했더니
크기도 4호와 비슷한데 화력과 방어력은 미친 물건이
전선을 만날때마다 무슨 수십대씩 배치되어 있으니
이건 뭐


물론 안좋네 뭐네 하는 불평불만은
소련도 매한가지였던지라
아무리 새삥이라고는 하지만
공장에서 황급히 주요 기계만 빼와서
거기에 지붕이란 이름의 철판떼기만 대충 올리고
그걸 공장딱지 붙이고 생산한 물건이 제대로 되면
그게 이상한거지
당연히 1941-1942년 당시 T-34는 신뢰성이 전부 바닥을 찍었는데
일단 조작체계 자체는 아주 간단해서
집단농장에서 필수로 가르치던 트랙터 수준의 조작능력이면
바로 몰 수 있을 정도로 단순했지만

조작체계가 단순한 거하고
대충 올린 공장에서 마구잡이로 만든 구동계로 실전에서 움직이는건
완전히 다른 영역이였다
오죽하면 당시 운용병들이 하던 소리가
"독일 미션은 개쩔게 좋은데 우리건 그냥 엿바꿔 먹어야 맞는 물건이다"
라는 폭풍 디스였을까
거기에 화력도 함정맛이 쩔었던 것이
애초에 76mm 장포신을 달았던 이유 자체가
소련이 가지고 있던 주포 제작기술이 원체 열악해서
모자란 관통력을 포탄의 대형화를 통한 운동에너지 증가로 해결하는
소위 화력덕후 사상에 의거해 만들어졌던지라
명중률은 개판이오
맞더라도 스펙상 관통력이 안나오는 일이 허다했다
무전기?
허허 제대로 켜지기만 해도 다행이지...
차체도 대략 난감하게도
정면에 떡하니 자리잡은 운전수용 해치가 큰 약점으로 작용했고
이 문제는 끝까지, 85mm형에서도 고쳐지지 않았다
물론 운전수 해치를 제외한 이런 운용상의 단점들은
본격적으로 발동이 걸렸던 1942년에도 조금씩이나마 해결되기 시작했으나
문제는 1942-1943년이면




독일이 본격적으로 7,5cm 장포신을 주력으로 쓰고
티거, 판터로 기갑의 전설을 찍어내기 시작했다는 것
화력이 아무리 좋게 봐줘도 4호 전차급이었던 76mm 형은
이 괴물들에게 물량을 붓는다고 해도 역부족이었고
결국 1943년 본격적인 화력 증강 계획이 실시,
그 결과물로 1944년 T-34/85가 투입되기 시작했다

이 T-34/85형은
차체는 포탑링등의 일부를 제외하고 그대로 두되
기존까지 2인체제였던 포탑을
3인용 대형포탑으로 갈아치워버리면서
동시에 85mm ZIS-S-54 강선포로 업그레이드한 물건이었는데
이 물건의 진정한 의미는
1944년을 기점으로
드디어 독일군을 양으로 씹어먹을 품질적 기반이 완성되었다
는 것이었다
일단 포탑이 커지면서
한명 더 들어와 효율적인 임무 배분이 완성되고
랜드리스를 통해 들어온 미국산 무전기로 갈아끼운 결과
더더욱 효과적인 작전기동이 가능해졌으며
구동계통 또한 품질이 상승하긴해서
조종성 및 실전 기동력도 나름 개선되었고
(뭐 그래봤자 조종성이 평균 미달이었다는게 함정)
방어력도 여전해서
드디어 3호, 4호 전차 정도는 껌으로 만들어버릴 수준으로 올라갔다
물론 그 기이할 정도로 높은 생산성은 그대로였고
이는 1944-1945년 단 2년간
T-34/85 22500대 생산으로 증명했다
그리고 동시에 소련은 본격적인 반격에 들어갔고
독일은 당시로서는 전설속에서나 나올법한 전차를 만들었지만
결국 패배하고 2차대전 패전국이 되었다
아무리 판터, 티거가 쎄다고 한들
기본적인 생산성은
가장 생산성이 좋았던 판터가 2년간 5000대로 끝날 정도였으니
이미 자릿수가 다르게 뽑혀나오던 T-34쪽이 절대적으로 우세했으며
85mm로 교체한 결과
주포기술이 딸려서 88mm보다는 못하다해도
75mm pak.40 대전차포 정도의 위력은 되었으므로
엄연히 독일 기갑의 다수를 채우던 3호, 4호는 충분히 짓밟을 수 있었다
티거? 판터?
어짜피 물량으로 쏟아져서 일제사격
아니면 물량으로 몰려와서 근접 사격전으로 들어가면
충분히 상대 가능했다
(다만 이는 반대급부로 그만큼 전차병들을 인명경시에 가깝게 갈아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거기에 후일 T-34/85들은

122mm 장포신을 탑재한 IS-2의 탱킹까지 받게 되니
한마디로 독일 입장에서는...

뭐긴 뭐겠어 아주 X된거지
이런 무시무시한 생산력과 적절한 성능을 자랑했던 T-34는
시대가 필요로 한 딱 그 정도의 성능을 가지고
대전 이후 생산량까지 합치면
총 생산량 9만대
1940-1945년 2차대전 기간으로 한정시
58600대라는
압도적인 물량으로 생산되어
괴물 집단이었던 독일의 기갑부대에 정면으로 맞서서
전쟁의 향방을 뒤집어버렸고
조국이라는 애칭을 달고 독소전쟁,
궁극적으로 2차대전 승리를 이끈 명품이 되었으며
나치 독일을 전투에선 이겼으나
전쟁에서는 패배한 전범국으로 만들어버렸다
당장 종합적 전투력은 T-34보다 더 높았던 셔먼이
당시 윗대가리들의 대전차전을 상정안하고 짜버린
여러모로 멍청한 운용 때문에
이기고도 놀림감이 되버린 위치를 생각하면
무기는 스펙만으로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
물론
우리의 입장에서는 이게 참 미묘한 것이
유럽에게는 2차대전을 끝내서 평화를 가져온 명품이었지만
소련이 2차대전 후 랜드리스로 T-34/85를 퍼줄때

김씨 일가의 한 망나니 손에도 들어가서
한국을 완전히 석기시대로 만들어버리는 원인제공을 한 물건이기도 하니
이런 기구한 운명을 어찌 해야할지...
여담이지만
1940년 당시 이 T-34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던
쿨리크 원수는
이후에도 탄알 낭비니 기관단총 금지
지뢰는 아무 쓸모없는 소모품
등의 온갖 병神짓은 다하다가
바르바로사 작전 당시 소련군의 대패를 초래한 후
전투 분석 후 패배원인으로 지목당해 소장으로 강등되었으나
끝까지 정신못차리고 있다가
기어이 전화로 스탈린의 뒷담을 까버리고
하필 그 내용이 그대로 도청당하는 바람에

그 즉시 시베리아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게 되었다
뭐 사후에 복권되긴 했지만 말이다
차회예고

명품의 조건 3
내 이름은 머스탱
내 앞을 가로막은건 모든지 파.괘.한.다
출처 fe.naver.com/ca-fe/web/cafes/acecombatweb/articles/13507?useCafeId=fal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