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갤에 종종 올라오는 '이 짤'

어느 모의고사에서 나온 것 같은데, 정확한 출처를 모르겠다. 모의고사에서 이 따위 지문을 출제한 것이라면 출제자는 대학원에 다시 입학시켜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보기>에서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라고 했으니 1897년 10월 즈음으로 해서 고종실록을 검색해보았다.
고종 34년(1897) 10월 13일에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고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발표한 반조문(경사가 있을 때 발표하던 조서)가 눈에 띈다.
'우리 태조(太祖)가 왕위에 오른 초기에 국토 밖으로 영토를 더욱 넓혀 북쪽으로는 말갈(靺鞨)의 지경까지 이르러 상아, 가죽, 비단을 얻게 되었고, 남쪽으로는 탐라국(耽羅國)을 차지하여 귤, 유자, 해산물을 공납(貢納)으로 받게 되었다.'
아무래도 출제자는 이 문장에 주목한 것 같다. 그렇다면 아예 박사과정까지 스트레이트로 밟게 해야 할 것 같다.
이 문장은 태조 이성계의 업적을 찬양하는 것이지, 절대 고종이 '제주도는 우리 식민지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공납에 근대의 식민지 개념을 적용하는 것도 무리일 뿐더러, 공납만 가지고 식민지라고 한다면 제주도는 이미 백제 때부터 식민지였다고 할 수 있다. 그 때부터 공납을 바치기 때문이다.
물론 여말선초까지 제주도가 반독립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걸 감안한다면 '공납=식민지'는 헛소리 중의 헛소리라고 할 수 있다.
제주도가 자체적인 성주제를 폐지하고 조선에 완전히 편입된 건 1402년(태종 2년)의 일이다. 그러면 그 이후로는 식민지였다고 볼 수 있을까?
본조 태종(太宗) 2년 임오에 성주(星主) 고봉례(高鳳禮)와 왕자(王子) 문충세(文忠世) 등이 성주와 왕자의 호가 너무 참람한 것 같다고 하여, 고치기를 청(請)하였으므로, 성주를 좌도지관(左都知管)으로, 왕자를 우도 지관(右都知管)으로 하였다.
- 세종실록 지리지 전라도 제주목 中-
원래 성주와 왕자를 그대로 관직만 바꿔서 남겨둔다. 심지어 이 직책은 세습도 가능했다. 식민지라기엔 너무 온건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14년 뒤인 1416년(태종 16년)에는 제주목/대정현/정의현의 1목 2현제를 실시하고 정 3품 목사와 종 6품 현감을 파견한다. 식민지는커녕 그냥 전라도 예하의 행정구역으로 편입한 것이다. 이걸 식민지라고 한다면 조선팔도의 목과 현은 전부 식민지라고 해야 할 것이다.
결론: 그냥 포도다. 명백한 포도다. 고종이든 태조든 제주도를 식민지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군밤, 그리고 제주도식민지...
저거 주장하는 사람치고 정상인 사람이 없는듯.
아무튼...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