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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요건은 무엇인가? 성적? 유망주 육성? 시스템 도입? 많은 이들의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므로 이는 각자 생각하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감독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 부분에서는 모두가 입 모아 말할 것이다. 바로 혹사다. 송창식, 권혁, 전병두, 임창용, 염종석, 최동원, 김시진, 장명부 등 과거로 내려가면 갈수록 상상치도 못한 혹사들이 쏟아져 나왔고 현대 야구에서 감독에게 가장 금기시되는 사항이 혹사이다. 그러나 가끔 혹사가 용인될 때도 있다. 이 부분은 의견이 갈릴 수 있겠으나. 혹사를 대가로 우승을 하면 가끔 그 혹사가 도를 지나치지 않는 한 묵인되는 경우도 있다. 그 반대의 예로 혹사의 도가 너무나도 지나쳤던 전병두가 있겠다. 몇몇 야구팬들이 " 선수 하나 갈아서 우승을 할 수 있다면 용납할 수 있다 " 는 말이 이제는 우스갯소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 여기서도 반대로, 가장 최악의 감독은 당연하게도 그와 정 반대인 선수를 혹사시키고 성적을 내지 못하는 감독이다.
잠깐 옛날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KBO에 가장 명장을 꼽자면 당신은 누굴 꼽겠는가? 먼저 해태왕조를 이끈 김응용과. SK 왕조를 이끈 김성근. 삼성 왕조를 이끈 류중일. 두산의 전성기를 가져온 김태형 등 수많은 감독이 있을 것이다. 다만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성적은 내지 못하였더라도, 한국 야구계의 근간을 다지고 새로운 변화를 이끈 감독이 딱 두명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 감독들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과거 한국야구를 포함한 전 세계의 야구는 혹사가 당연시되던 시기였다. 한국시리즈의 휴식일은 길어야 2-3일에 불과했고, 정규시즌에도 지금보다 한참 경기수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200이닝을 훌쩍 뛰어넘기 일쑤였다. 그중에서도 단연 혹사가 심했던 감독은 OB의 김성근이였다. 일본식 야구로 한국에서 승부를 본 그는 중계투수간의 구별이 없었으며 특히 윤석환으로 정점을 찍은 그는 수많은 OB 팬들의 질타를 받고 감독직에서 물러나 흘러흘러 신생팀 태평양으로 오게 되었다. 당시 태평양은 꼴찌를 면치 못하던 상황이였고 89년 김성근 감독의 부임으로 성적이 반등해 명장 반열에 오르는 듯 싶었으나 후에 김성근의 최악의 혹사는 쌍방울도 오비도 삼성도 아닌 한화와, 그에 견주는 태평양이였음이 밝혀지면서 지금은 태평양의 오점으로 남은지 오래다. 다만 그때 당시에는 인천 팬들에게 최초로 가을야구를 선물해주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지지를 받기도 했던 터였다.
김성근이 지나간 자리에는 풀 한 포기 남지 않는다. 야구계에서 유명한 말이다. 김성근이 휩쓸고 간 태평양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초특급 신인 박정현은 이미 생활에 지장이 갈 정도였고 정명원과 최창호. 그리고 신인 정민태까지 마찬가지였다. 이 허허벌판에 정동진은 도착해 가장 먼저 미국에 전화를 걸었다. 당시 메이저리그에서도 유명했던 제임스 엔드류스에게 전화를 걸었고, 네명 모두 수술 일정을 잡았다. 그러나 그 전까지 한국에서는 단 한번도 토미존 서저리를 받아본 적이 없었고, 선수들은 자신의 선수 생명이 끝날까봐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러자 정동진은 "수술에 실패하면 내가 니들 연봉 3년치를 주겠다" 고 하면서 수술을 보냈고. 그 결과물은 현대 왕조의 씨앗이 되었다. 정민태는 말할 것도 없고 정명원도 마무리로 커리어하이를 찍은 뒤 현대 신생기에 선발로써 최창호화 든든한 역할을 해 주었다.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척박한 땅에서 역사에 남을 나무의 새싹을 틔워낸 것이다. 그 외에도 선수들의 혹사를 근절시키고, 재활군을 최초로 도입하는 등 한국 야구의 투수계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정동진의 94년 태평양은 아직까지 전설로 남아있지 않는가?
이광환 이름 석 자는 몰라도 94년 LG의 신바람 야구는 알 것이다. 정동진보다 더 야구계의 한 획을 그은 인물로, 당시 혹사가 당연시되던 리그에서 라루사이즘, 즉 투수들의 분업화를 이루어낸 인물이다. 9회 등판하는 마무리 투수, 5인 로테이션, 투수 연투 방지, 선발투수 구원등판 금지 등 대부분 혹사를 막는 것들은 이광환과 김명성이 가지고 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투수들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광환이 아니였으면 아직도 투수들은 30대 초반에 은퇴했을 것이다. 거의 투수의 생명을 10년 가까이 늘린 감독이다.
또한 단순히 투수 분업화 뿐만이 아니라 선수들의 부상을 방지하기 위하여 트레이닝 파트의 권한을 늘리고 라인업을 함께 수정하는 등 그전까지 단순 마사지사로만 취급받았던 피지컬 트레이너들을 격상시키고 세부적인 체력 훈련 등을 계획하는 등 수많은 업적을 남기며 94년 이광환은 정동진과 함께 한국 투수사를 완벽하게 뒤집어엎었다.
이 두 감독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바로 투수들의 혹사가 단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많은 우승을 가져온 김응용도, 인천의 부흥기를 가져온 김성근도, 국가대표 감독까지 갔던 김인식과 김경문도 그 누구도 혹사의 손가락질에서 비껴냐갈수는 없었다. 단지 우승이라는 거대한 업적에 가려 보이지 않던 민낯이 천천히 드러나는 것 뿐이지. 물론 어느 정도의 혹사가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김용수롤 혹사했다는 얘기가 있기는 하지만 당시에 비하면 정말 센세이셔널한 야구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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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김원중 더블헤더 혹사
왜 이렇게 서론을 길게 썼냐면, 구승민과 박진형이 갈릴대로 갈려서 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고, 거기에다가 김원중 더블헤더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기 때문이다. 허문회는 지금 자신의 자리를 보호하고자 옹졸하게도 롯데의 미래를 갉아먹고 있다. 타 선수들에 비해 혹사지수가 높지는 않지만 구승민과 박진형은 모두 수술 전력이 있다. 한번 터진 팔꿈치와 어깨는 끝없이 터진다. 조정훈을 아직 기억하는가? 조정훈도 2010년 시즌 이후로 한번 수술한 곳이 덧나고 덧나서 결국 8년이란 시간이 지나고서야 마운드에 복귀할 수 있었다.
냉정히 말해서 롯데는 지금 가을야구를 갈 가능성이 낮다. 만약 어거지로 5위를 한다고 해도, Kt나 두산에게 2승을 딸 수 있겠는가? 스트레일리가 1경기에 나온다면 도대체 2경기에는 누가 나와서 우리를 4년만의 준플레이오프로 이끌어 갈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선수를 갈아서 가는 와일드카드가 그렇게 중요한지 필자는 잘 모르겠다. 그것도 부상 전력이 있고, 기본적으로 체력과 이닝 소화력이 길지 않은 불펜을. 애시당초 박진형은 강릉고 시절 선발투수였으나 체력 부족으로 불펜투수로 전향한 케이스이다. 거기에 수술로 2년 가량을 날린 투수를 우리는 다시 날리게 될 지도 모른다.
이광환이 기억되는 이유는 단순히 94년 LG의 우승 감독이여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까지 야구팬들 사이에서 우승도 하지 못하고, 심지어 한국시리즈도 4대 0으로 패한 정동진 감독이 기억되는 이유는 팀이 꼴찌를 하는 한이 있어도 선수를 혹사하지 않았고 후대에 그대로 물려주어 왕조의 씨앗을 남겼기 때문이다. 만약 현대왕조에 정민태가 없었다면? 과연 임선동과 김수경만으로 당대 최강의 삼성을 이길 수 있었겠는가? 결국 사람들은 조금의 성적을 낸 감독보다 씨앗을 심은 감독이나, 혹사 없이 잘 물려준 감독을 더 고평가 할 것이다. 사실 허문회도 이해가 간다. 당장 자기 목숨이 잘리게 생겼는데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는 생각은 자연스레 들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진정한 감독이라면 그걸 절제하고 성적이 나오지 않더라도 연투는 자제해야 한다. 3연투는 더더욱. 구승민과 박진형, 김원중은 향후 5년은 롯데의 불펜진을 책임질 선수들이고 성민규 단장이 얘기한 2021년, 2022년의 미래를 바라볼 때 주축이 될 선수들이다. 그러나 구승민과 박진형은 현재 144경기를 다 치룰 경우 투구수가 천개가 넘어가고, 김원중은 7월 이후 조상우 다음으로 혹사당하고 있다.
팀이 10등을 하더라도 롯데의 애당초 목적은 올해가 아닌 내년, 내후년, 그 다음년이였기에 허문회의 3년 계약은 아마 그대로 갔을지도 모른다. 다만 팬들의 의견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다만 허문회는 지금 잠깐잠깐 내려오는 가을야구라는 빛줄기에 취해 앞뒤 물불 못 가리고 선수들을 갈아대고 있다. 몇년 후 밭에서 결실을 틔우기 위해 데려온 농부가 지금 당장 돈 조금 벌어보겠다고 씨앗 종자를 뿌렸다가 캤다가 팔았다가 샀다가를 반복하고 있는 모양새란 말이다. 그래서는 결국 우리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처음 땅을 산 지주가 생각했던 몇년 후의 결실도, 농부가 생각하는 지금 당장의 결실도 전부 이도 저도 아닌 모양새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소탐대실. 허문회에게 가장 어울리는 사자성어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