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차에 걸친 대 거란 전쟁에서 승리를 차지한 고려는, 그들이 후신을 자처한 고구려처럼 나름 지역강국으로서의 위세를 갖추게 된다.
물론 지역강국이라 하여 고구려급 독자 천하관을 펼칠 정도로 대단한 것은 아니었고, 고려와 요의 관계 역시 형식적으로나마 고려가 요를 존대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이 시기 고려는 건국 이래 가장 정치적으로 안정된 상태였고, 귀주에서 거둔 대승을 세상 모두가 기억하고 있었다. 전쟁의 참화에 긁힌 자리가 여전히 쓰라렸지만, 상처는 회복되기 마련이다. 고려는 유목제국 요와 한족 왕조 송, 시대를 대표하는 양대 세력조차 절대 가벼이 여길 수 없는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고려가 여요전쟁의 여파에서 한창 회복 중이던 11세기 막바지, 잊혀진 땅 만주의 정세가 급변하기 시작한다.

과거 말갈이라 불린 퉁구스계 반농반목민은 이 무렵에 우리에게 익숙한 여진으로 칭해지는데, 이 시기의 여진은 요에 복속된 숙여진과 겉으론 요의 신하를 자처하나 북만주 일대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한 생여진으로 나뉜다.
여기서 생여진이라 할 수 있는 완안부가 크게 성장하여 남쪽으로 고려 천리장성 방면까지 진출할 만큼 세력을 넓힌다.
완안부의 존재감은 다른 여진 부족들에겐 불안함을, 신흥 지역강국으로 급부상한 고려에게는 심한 불쾌함을 일으키게 된다.
뜬금없게도 사건은 완안부의 집안 문제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완안부의 추장은 오아속이라는 자였는데, 완안부에 협력하는 추장 중 하나인 부내로와 무엇이 문제였는지 심한 갈등을 빚는다.
만주 상남자 오아속은 유목민들의 오랜 전통인 부족 몰살 루트를 찍었고, 부내로는 패퇴하여 고려 북쪽 경계 정주성까지 내려와 두들겨 맞은 뒤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러지 않아도 거슬리던 것들이 북방 멀티 앞마당에서 자기들끼리 싸움질을 벌이자 고려는 어이가 없는 걸 넘어 뚜껑이 열려버렸다.
더군다나 친고려 노선 여진 부족들이 입을 모아 "정주성 사건은 완안부 오아속이 고려를 공격하기 전 예행 연습임ㄹㅇ루다가ㅋㅋ" 뇌피셜까지 펼치자 안 넘어갈 수가 없었다.
울고 싶던 참에 뺨 맞은 격이었다.
그러나 여요전쟁으로 단련된 대 유목민 전쟁의 스페셜리스트인 고려 수뇌부는 열은 뻗쳤을지언정 냉정한 포석을 내놓는다.
1. 원정군은 일단 정주성에 입성해 여진족의 공격에 대비하여 농성을 준비한다.
2. 정주성이 안정되면 신속히 여진족의 주요 길목인 마천령을 제압한다.
3. 이때, 여진족이 남하할 경우 험준한 마천령에서 분쇄한다.
훌륭한 설계였다. 총사령관 임간이 고려판 마속이었다는 게 문제였을 뿐.
임간은 수뇌부 결정과 정반대로 개활지에서 여진족 군대에게 선빵을 갈겼다가 참패하여 원정군을 갈아먹는다.
적을 등 뒤에 둔 절망적인 퇴각전, 고려군이 수세에 몰린 그때, 하급 무관 한 명이 칼과 말을 청하더니 혼자서 여진족 진영으로 뛰어들어 지휘관급 목 하나와 아군 포로 둘을 구출해 돌아온다.
코리안 소드마스터 척준경의 데뷔전이었다.
임간은 경질되고, 신임 총사령관으로 윤관이 임명된다.
임간이 모예스라면 윤관은 솔샤르였다. 그 또한 대차게 말아먹는다.
1104년 여름에 오아속은 사절을 파견해 고려와 화친을 맺는다. 완안부가 먼저 청하였기에 고려측 체면이 서긴 했으나, 형식상 절차에 지나지 않았다.
완안부는 이번 싸움에서 고려측에 붙은 추장들을 받아간다. 유목민 법도에 따라 그들은 죽거나 노예가 될 터였다.

"ㅋㅋㅋㅋ고려 최단퇴 거품이었누?"
고려는 그동안 발해가 남긴 부스러기 정도로 생각하던 변방 야만인들에게 제대로 한방 먹었다. 유목제국 요를 깨부순 그 대단한 나라의 위상이 하루아침에 땅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고려왕 숙종은 굴욕감에 분개하여 천지신명에 "내가 언젠가 저 놈들을 다 잡아죽일 겁니다. 그땐 저 놈들 사는 땅에다 절을 짓겠습니다." 라고 약조까지 올린다.
실책에도 불구하고 윤관은 유임되었다. 윤관은 숙종에게 그 시대 사람으로선 대단히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1. 신분에 상관없이 모병할 것.
2. 국가 주도로 기병을 양성할 것.
숙종이 이를 수용하니, 바로 교과서에서 한 번쯤 보았을 별무반이다.
세상 여진족을 다 잡아죽이겠다던 숙정은 평양 순시 도중 사망하며 결국 원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숙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예종은 정찰 목적으로 한 차례 원정대를 파견했을 뿐, 숙종 만큼 강한 정벌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별무반은 그대로 유지되었으나, 예종은 여진과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대신 여러 부족과 조공 관계를 형성해 그들을 억제하고 감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그러나 그 해가 지나기도 전에 북방으로부터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데...
참 척준경 인생도 사묘아리처럼 끝까지 화끈했다면 좋았을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