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진주만 공격 후 미국이 전쟁에 참전하게 되고
위기의 영국을 지원하기 위해 대규모 물자 지원을 결정 한다.
독일은 미국 동부 해안에 유보트를 투입 수송선단을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평화로운 미국 동부해안은 곧 지옥 같은 전쟁터가 되는데..
독일의 유보트함대는 미 동부해안에서 2차대전 중의 최고의 전성기를 맞는데..
캐나다 앞바다 부터 아래의 카리브 해까지 닥치는 대로 연합상선을 침몰시킨다.
유럽에서 독일군과 처철하게 싸우고 있는 영국과는 달리 미국은 참전만 선언했을뿐
아직 본토의 평화 모드와 어리버리한 군기상태에서 유보트를 맞이하게 된다.
유보트함대는 매달 110여척씩, 1년에 700만톤의 수송선을 침몰시킨다.
이는 미국의 1년 동안 배를 건조하는 상선보다 훨씬 초과하는 전과였다.
영국의 처질은 좌절하게 된다.
미국으로 부터 전쟁 지원 물자가 없으면 이대로 영국은 멸망하고 만다.
미국도 정신 차리고 수송선단에 구축함들을 동원하여 철저하게 호위하면서 유보트에 맞섰다.
유보트: 어서오세염
유보트: 울프팩 작전이라고 들어보셨나?
독일은 연합국의 호송선단에 맞서 대규모 유보트 편대(최대로 동원한 숫자는 53척)를 동원해
호위함과 상선을 동시 공략하는 늑대의 무리 사냥 작전 즉 울프팩 전법을 사용한다.



구축함의 호위를 받는 호송선단도 유보트 함대의 상대가 되질 않았다.
미영 연합국은 유보트함대와 처절하게 맞섰지만
너무나도 유능한 유보트 함장들한테 처참하게 농락당하고 만다.
캐나다 해군까지 가세하여 대항해봤지만 유보트한테 앞마당이 털리고
캐나다는 세인트로렌스 국제 무역 항구를 폐쇄한다.
무역항구가 폐쇄되자 캐나다 영국간의 무역루트까지 막혔고 영국은 겨울을 넘기기 힘들어 보였다.
유보트는 영국으로 전달되는 수송물자를 현저하게 차단하여 연합국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당할 수만은 없었다.
캐나다는 항속거리를 늘리기 위해 무기를 제거한 해상 초계기를 보내 호송선단을 지원하는 한편
해군을 확장 증설한다. 훈련병은 겨우 16주 훈련 후 대서양으로 보내졌다.
한편 미국은 맹렬한 속도로 상선을 건조해 낸다. '리버티'라는 거대 상선은
원레는 건조가 245일이 걸렸지만 생산성을 증가시켜 8주만에 1대씩 건조해냈다.
미국의 계획은 유보트가 격침시키는 숫자보다 더 많이 만들어 내면 된다는 생각이였다.
위기에 빠진 영국을 지원하기 위해 연합국 호송선단은 울프팩을 뚫으려 사력을 다한다.
반면 유보트함대는 반드시 연합국 호송선단을 막지 않으면 독일은 패배하고 말것이다.
반드시 뚫어야 한다 vs 반드시 막아야 한다
과연 연합국은 이대로 전쟁에서 지고 말것 인가?
1943년 미국은 본격적으로 전시체제로 전환한다. 이해부터 미국의 공장들이 풀가동 되고
뿜어져 나오는 막대하고 엄청난 생산력의 첩보 보고를 받은 독일은
어의가 없었다.
독일은 미국의 건조량을 250만톤정도 일거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전시체제의 미국의건조량은 1천만톤을 넘었고
전시체제 2년동안 110척의 항공모함을 건조하는 등
미국의 압도적의 물량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미국은 모든 수송선단에 항공모함을 투입하고 8대의 구축함을 함께 스쿼드를 편성,
잠수함만 집요하게 잡아내는 '헌터킬러' 작전을 사용한다.
모함의 항공기는 수송선단 주변을 24시간 내내 감시하며 잠수함을 발견하면
구축함과 끝까지 추격하여 침몰시켰다.
게다가 미국은 유보트의 교신암호문을 해석하기 시작하여 유보트의 위치 파악이 쉬어진다.
결국 유보트는 더이상 힘을 내지 못하고 대서양에서 후퇴하고 만다.
1943년 7월 연합국은 대규모의 물자와 병력이 유럽에 상륙하게 된다.
유보트는 영국해안으로 무대를 옮겼으나 유보트 생산공장이 있었던 프랑스가
연합군에게 탈환되면서 유보트의 시대는 끝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