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날 위쳐3 3회차를 마치고 현타가 와버린 나.
스팀 라이브러리를 둘러보거나 세일 특집란을 둘러보았지만, 가슴에 와닿는 타이틀은 없었다.
다들 할인율이 적힌 초록 딱지를 달고 날 애처롭게 바라보았지만 난 차갑게 돌아섰다...
그렇게 하릴없이 밝은 빛을 뿜는 모니터 앞에서 멍을 때리다, 문득 한가지 상념이 옆구리를 찔렀다.
어쩌면 난 극도로 고도화된 게임들에 물려버리고 만 것일까?
치밀하게 계산된 스토리, 화려하고 사실적인 비주얼의 그래픽...
마치 현실의 미물들이 발버둥쳐봤자 어느 현자가 말한 유토피아에 도달할 수 없듯이
장대하고 사실적인 면모만을 내세우며 서로를 저울질하는 요즘 게임 시장에 질린 시점에 도달하고야 말았다.
그래. 가끔은 뒤를 돌아볼 필요도 있다.
뻔뻔스럽게도 저열한 비주얼과 사운드지만, 상상력이란 최고의 그래픽카드가 보조해주리라 굳게 믿고 세상에 나왔던 고전 게임들.
어릴적의 우리들은 모두 투박한 캐릭터가 움직이는 작은 화면을 창문삼아 환상적인 세계가 펼쳐지는 것을 얼마든지 엿볼 수 있었다.
나는 십수년만에 그 사실을, 추억을 기억해내었다.
회귀.
본질로 돌아가자.
게임을 플레이하며 원초적인 재미를 자극받던 그 시기를 되살리자.
그렇게 나는 네오지오 아케이드 스틱 프로를 구입했다.
다행히도 국내의 모 수입사에서 정식으로 출시를 하였고, 인터넷으로 손쉽게 구매할 수 있었다.
낯선이와 만나 어색하게 이름을 교환하고 서서히 벽을 허무는 단계따위 없다.
어쨌든 초면에 바로 친구먹자고 달려든다.
아무도 줄여주지 않을 것 같아 본인이 직접 줄인 ASP란 이름을 달고.
참, 박스의 겉모습을 먼저 봐야겠다.
그 시절의 오락실을 집에서.
새삼 '그 시절'이라고 명명된 시기가 떠오른다.
맙소사,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한 '시절'이 되어버린거냐...
20개의 타이틀들이 내장되어있다.
모두 격투게임 뿐으로, SNK 사이트에서 게임 언락키를 다운 받으면 숨겨져있던 게임들을 해금할 수 있다.
추가 다운로드가 아니다. 원래 있던 건데 해금시키는 거다.
참... 알 수 없는 정책.
물류 직원분들이 안심하고 던질 수 있다.
너무... 이쁘다.
아름답다거나 귀엽다는 말 보다는 이쁘다는 말이 적격인듯한 외형이다.
사진으로만 봤을 땐 아담해 보였는데, 생각보다 사이즈가 묵직하다.
그 시절엔 커다랗게만 보였던 게임기인데, 이제 나만 혼자 훌쩍 커버려 새삼 작게 느껴지는 게임기...
그런 거 없다.
여전히 게임기는 크다.
안보고 버릴뻔한 설명서.
원래 이런 건 몸으로 부딪히며 배우는 게 제맛이다.
USB-C 케이블로 전원 공급을 한다.
화면출력은 HDMI이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감상이 드는 건 어째서일까.
추억이라면 모름지기 DVI 포트에 독자 규격이여야 만족하는 걸까 나는?
110볼트 기기를 위해 아버지께 도란스를 부탁하던 그 감각을 못 잊은듯 싶다.
구동 모습.
김이 빠질 정도로 세팅이 금방 끝나버렸다.
한글 설정은 옵션에서 손쉽게 가능하다.
다만 이상하게도 메탈슬러그는 렉이 걸린다.
아니... 순정인데 렉이 왜 걸리는건데.
그래서 지금은 외국에서 제작했다는 해킹롬을 알아보고 있다.
거기엔 각종 기판 별로 게임들이 추가되었음은 물론이고,
패미컴이나 게임보이 따위의 게임들까지 들어있는듯 하다.
그건 별로 하고싶지 않다...
대화면으로 즐기는 게임보이라 ㅠㅠ
메탈슬러그가 렉없이 원활하게 돌아가기만 하면된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