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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6 19:17

포텐 삼국지를 종결시킨 서진, 그 몰락의 원인들

조회 수 35383 추천 수 91 댓글 51


(글 많고 요약 같은 건 없으니까 읽고 싶은 사람만 읽으셈)





1. 탈법적 제위 찬탈로 인해 빚어진 황실의 정통성 부재 : 위나라를 세운 조비는 그 부친인 조조가 만들어낸 업적(후한 재건, 중원-하북 평정으로 군웅할거 종식)의 위광을 기반으로 선양을 받아내었고 비록 헌제가 조씨에게 핍박을 받았다고는 하나 막상 선양을 해서 후한을 끝내고 조위가 시작된 이후로는 산양공 작위를 받고 조비보다도 수년을 더 살며 천수를 누리며 인생을 잘 하직하였음. 이런 선양의 원리는 전설적인 요순시대의 방식에서 착안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또 후한-조위의 선양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피바람도 적은 편에 굉장히 스무스한 편이었기에 정통성 면에서 조위가 그렇게까지 문제를 가지지는 않았음.


한편 사마씨의 경우를 보자면 사마의가 정권을 잡고 그 아들인 사마사가 사실상 조위 황실 친위 세력을 완전히 무력화시킨 시점까지야 동서고금 권신이 허수아비 왕실을 제압하고 왕위를 찬탈하는 과정으로써 흔한 방식이었으니 그렇다고 칠 수야 있겠으나 사마사가 급사한 뒤에 가주 자리에 오른 사마소가 부하인 가충을 시켜 백주대낮에 '현직' 황제를 시해한 사건은 그렇다고 쳐줄 수가 도무지 없었던 사건으로, 이 한 방으로 사마씨의 정통성은 그야말로 바닥을 치는 수 밖에 없었음.(물론 서진-동진은 정통 왕조로 꼽히지만 이는 남북조 이전 최후의 통일 한족 왕조, 한족 왕조 저항 세력의 효시라는 점에서 가지는 정통성이 더욱 컸기에 그러했던 것)

 

동서고금 권신이 주군을 압박해서 선양을 받아 정식으로 왕조를 교체하거나 혹은 주군이 봉신 계약을 함부로 어겨 폭군으로 낙인찍힘으로써 역성혁명파가 정식으로 폭군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왕조를 교체하거나(이 케이스는 주로 쌍무적 계약 관계가 일반적이던 유럽에서 발생. 중동의 경우, 이슬람 보편화 이후로는 '주군이 이슬람적 가치를 어기고 퇴폐해졌다'는 명분으로 주군을 제거하는게 가능했음.) 어쨌건 어지간한 명분이 없는 한, '현직' 왕이나 황제는 절대적으로 건드리지 않는 것이 보편적이었고 이를 어기는 순간 '선 넘네..'로 당대인들이 받아들인 점을 고려하면 사마소의 대책없는 조모 시해 사건은 서진의 첫 단추부터를 잘못 꿰어버리게 만든 일.

 

개인적으로 필자가 사마소의 역량을 아버지나 형의 발뒤꿈치에도 따라가지 못한다고 보는 이유도 여기서 기인. 황제가 선왕의 씨가 아니라는 누명을 씌우던 혹은 폭군이라 어쩔 수 없다는 이미지 메이킹을 만들어내던 간에 동서고금 신하가 그 자신의 주군을 제거할 때에는 당대인들이 '그래도 선 넘은 건 아닌 듯..'이라는 정도는 인식해줄 명분이라는 것이 필요했으나 사마소는 그런 명분 하나 없이 대뜸 백주대낮에 황제 배때지에 창빵을 놔주고 자신은 나몰라라 말단 부하 하나 처리하는 정도에서 책임을 무마하였으며 오늘날에야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조조가 '현대인의 관점'에서 사마소보다 더 비판을 받지만 전근대 사회에서는 대개 명분없이 자신의 현직 주군을 시해하는 '대역의 죄'는 '민간인 대량학살보다도 압도적으로 더 심각한 대죄'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마소는 조조보다도 당대에 더 잔악한 자로 비판받을 수 밖에 없었음.


석륵이 조위와 서진을 모두 비판하고자 그 실질 시조들인 조조와 사마의를 싸잡아 '아녀자들로부터 아첨으로 권력을 빼앗는 쓰레기들'이라고 디스한 거야 석륵이 외부인이라서 그런거라쳐도 무려 사마소의 후예인 동진 명제 사마소는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자기 조상들인 사마의, 사마사, 사마소를 세트로 까며 '그 짓을 했으니 서진이 망한건 당연한거고 그 피를 이어받은 이 동진도 얼마 못 갈 듯'이라고 말한 시점에서 당대 사람들이 사마소의 저 악행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였는지 잘 알 수 있음. 자기 조상이자 자신을 황제로 만들어준 시조에 대해서조차도 좋은 말을 차마 해줄 수가 없는 행위였다는 것.


이 사마소의 시해 사건-사마씨의 처참한 도덕윤리 이미지와 정통성은 조조가 제대로 숙청하지 않은(못한) 채로 그대로 잔존하여 압도적인 세력을 유지하던 후한 호족-귀족 집단의 권력 강화와 맛물려 초기 서진이 호족-귀족 집단을 억제하지 못하고 그들이 폭주하며 사회 전체가 혼파망의 지옥으로 변모하게 만드는 것에 일조하게 되었음. 탈법적 수단으로 제위를 '당대인 기준으로 보아도 찬탈해버린' 왕실에게 진심으로 충성하는 귀족이 있을리가 만무하며 황실인 사마씨는 과거 조조가 구축했던 위업과 권력조차 없는, 그저 '우리도 귀족 중 하나였을 뿐'이라는 시작 지점과 저 바닥스러운 정통성 때문에 다른 귀족들을 '억제'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그저 그들이 뭘하던 "우리 귀족 하고 싶은거 다해 ㅜㅜ 충성만 바쳐줘 ㅜㅜ" 따위의 오냐오냐하는 태도를 보일 수 밖에 없었던 것.


혼란을 극복하고 특정 동질 문화권 지역을 재통합한 세력이 이 정도로 초기 성장 원동력도 없고 시작부터 막장인 경우는 세계사에서도 거의 유례를 찾기 어려움.

 

 



2. 리미트 해제된 문벌 대귀족들의 폭주 : 위의 문제점과 같은 맥락에서 발생하는 문제로, 비록 조예 말년부터 말아먹어서 그렇지 조위는 그래도 조씨 황실 종친과 후한 시기부터 계속 내려져오는 강대한 대호족-귀족 집단과의 정치 비중을 비교적 잘 조율했던 편이었으나(여담으로 삼국 중에서는 가장 호족-귀족 문제에서 자유로웠던 촉한은 적어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가장 이상적인 체제였던 국가) 근본적으로 조위 자체가 실질 시조로써 숙청매니아 이미지를 가진 조조가 실제로는 제대로 된 대단위 정치 숙청을 거의 하지 않은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기인하는 대귀족 발호의 문제를 장기적으로 억제하기는 어려운 국가였음.


이 와중에 결국 군권까지 조씨 황실 종친이 아니라 사마씨에게 넘겨준 시점부터 조위의 몰락은 완벽하게 예정된 수순이었는데, 문제는 사마씨는 조위의 저런 문제점을 잘 극복하고 왕조를 세운게 전혀 아니었다는 것. 위에서 언급한 저런 탈법적인 과정으로 스스로 자가 정통성 제로를 찍어버린 뒤에 제위를 찬탈한 사마씨는 조조가 세운 업적같은 것조차 없는(솔직히 사마의의 업적은 조조의 업적에 비하면 갖다댈 것도 아니었고) 그야말로 '야 나두 귀족이었어 :) 야 너두? 너두 할 수 있어 임마 :)'의 슬로건을 가진 왕조를 세운거나 다름없었던 꼴이었고 당대 대귀족들을 억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음.


어지간한 다른 왕조 같았으면 애진작에 목이 달아날 일들을 당대 귀족들이 서슴없이 저지르는(황제가 하사한 산호수를 쬐깐하다는 이유로 박살내기, 황제 초대해놓고 사람 젖 먹여 키운 돼지고기 대접 등등) 와중에 사마염과 같은 건국 시조 황제가 아무 말도 못하고 "우리 귀족 하고 싶은거 다해 ㅜㅜ" 이러고 있는 부분 자체가 서진 사마씨가 애시당초 귀족들을 제어하는게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로 황권이 약했음을 시사.(참.. 건국 시작부터 이 모양인 것도 대단하다 정말.. 사실 이는 사마씨의 서진이 어떤 개혁을 이룩해내어 만들어진게 아니라 그냥 후한-조위의 '완벽한 연장선'에 있는 왕조였기 때문)

 

저런 귀족들은 당대에 널리 횡행하던 마약 오석산에 취해 뽕쟁이들이 되어 더더욱 온갖 패악을 저지르며 미쳐날뛰었고 온갖 사치 릴레이 레이스를 벌이는데 그렇다고 그들이 재산을 합법적으로 충전한 것도 아니며 지나가던 상인 쳐죽이고 재산 몰수, 고리대금업으로 자영농을 붕괴시키고 그들을 소작농 내지 노비로 만들기 따위로 사회 자체를 붕괴시켜가며 재산을 확보했다는 점에 있어서 그 사치는 '정당한 사치조차 아닌 것'이었음.

 

거기에 조위의 실질 시조 조조가 이미 보여준 태도이기도 했지만 당대 신진 세력들이 전한-후한의 유교적 덕목에 의거한 지나친 도덕윤리 중시 사회사조에 반발하며 만들어낸, 그저 자기 감정에 솔직하자라던 새로운 사회 사조는 하안, 하후현 등의 그나마 학식있는 현학자들 정도면 몰라도 나머지는 그냥 자신이 쾌락을 위해 저지르는 패악을 자기합리화하는 용도로 변질시켜 사용하고 있었으며 이는 대귀족들이 패악질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마구 저지르게 만드는 '사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던 것. 서진의 사회는 후한 말에 이미 문제점으로 시작되고 있던 대귀족들의 패악이 오히려 더욱 심화된 사회였음.(지방관 군벌 세력에게 중앙 대귀족들이 깨갱하던 군웅할거의 대혼란 시절과는 달리 지방관 군벌 세력이 거의 없어진 통일 왕조 서진에서는 중앙 대귀족들이 눈치볼 이유조차 없어서 그 지방관 군벌 세력 대신 막나가버리니 이 또한 아이러니..)



 

3. 자영농의 붕괴, 이로인한 하층민 사회 전체의 변화 : 말기 로마 공화국이 그러했듯이 후한 말부터 자영농 집단은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는데 그것이 완전히 폭발한 시점이 바로 서진의 시기. 저 대귀족들의 발호로 자영농 집단은 아무런 제한도 없이 귀족들에게 재산을 직간접적으로 탈취당하며 자영농으로써의 위치를 유지하지 못하고 소작농 내지 노비 신세가 되었으며 거기에 당시 세계적으로 이상 기후가 발현하던 때라 중국은 가뭄, 지진, 폭우, 홍수 등이 거의 연례행사급으로 터지고 있었음.

 

아마도 소빙기로 의심되던 시기. 농민들의 농업 생산력은 안 그래도 박살이 나고 있는데 이 와중에 귀족들에 의해 자기 토지조차 유지할 수 없게된 사회 변화 속에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자영농의 붕괴는 자영농 경제를 기반으로 중앙집권화를 추구하는 전통적 중화식 유가 중앙집권정이 도저히 유지될 수 없도록 만듦. 이 글의 항목 중에선 제일 짧게 쓰고 있지만 사실 이게 가장 근본적으로 결정적 원인. 물론 이 글의 모든 이유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더욱 최악 중의 최최악 문제점이지만.


 

 

4. 울며 겨자먹기식 준봉건제(?) 체계를 선택한 사마염 : 사마염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바보는 아니었음. 그렇다고 저 엉켜있는 실타래를 과감하게 자기 목숨 걸고(굳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훗날 동진 명제 사마소도 그렇고 동진, 유송, 소제 등의 남조 왕조들에서 뭐 좀 해보려던 황제들은 요절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았고 이는 귀족들에 의한 암살을 암시하는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함) 해결하려는 영웅적 면모도 없고 뛰어난 지략으로 근본적인 시스템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제도 입안과 혁신도 해내지 못했기에 그렇게 유능하다할 인물도 아니지만 적어도 뭐가 문제점인지 얼추 알고는 있었던 인물.

 

그랬기에 그가 선택한 울며 겨자먹기식 해결방안은 결국 '이런 모든 문제점에서 사마씨의 사직과 천명을 유지하는 방법은 사마씨 황족들이 군권을 철두철미하게 쥐는 수 밖에 없어..'였다는 것이다. 조위가 그렇게 하지 않았기에 결국 후한 말엽부터 군웅할거를 거쳐 조위에까지 이어진 대귀족들에게 그대로 먹혀버린 것처럼(사마씨는 결국 단지 그들을 대표했을 뿐) 사마씨가 똑같이 당하고 싶지 않다면 이렇게 하는 수 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황족들을 지방 각지에 왕으로 분봉하고 장군의 직위를 선사하여 군권과 봉토 소유권을 모조리 인정해버렸던 것.(아아.. 언제나 호족들을 숙청하던 원소니뮤.. 당신이 통일을 했어야..)


문제는 이 준봉건제 체계가 서양식 쌍무적 계약관계에 의거한 것도 아니고 그냥 '황위 계승권을 가진 인물들에게 군권과 토지 지배권까지 선사한' 것이라는 점에 있어서 그 불안정성은 서양이나 일본의 봉건제와는 가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높은 것이었고 거기에 위의 대귀족-호족 집단의 폭주와 함께 발생하는 외척 세력의 발호(가남풍이 엄청나게 욕을 먹고 실제로도 그래야하긴 하나 저런 체계에선 굳이 가남풍이 아니어도 언제라도 대귀족 출신 외척 세력과 제 2의 가남풍이 나올 수 밖에 없음)가 이 서진식 준봉건제와 맛물려 정치 싸움이 스케일 크게 벌어지자 지방의 실질적인 군주들로써 독립적 군권을 가지고 있던 이 지방 황족들은 곧바로 서진 전체를 분열로 몰고가는 내전을 벌이기에 충분할 수밖에 없었음.

 

가남풍이 권력을 위해 의붓아들이자 제위 계승자 사마휼을 살해하고 그 뒤, 초왕 사마위를 선동하여 여남문성왕 사마량을 살해하게 한 다음 사마위를 계략으로 숙청하자 이를 명분으로 삼아 지방 군권을 가지고 중앙으로 짓쳐들어온, 실질적 팔왕의 난 첫 스타트를 끊은 조왕 사마륜이 가남풍과 가씨를 모조리 족멸시키고 제위에 스스로 앉아버리면서 방아쇠가 당겨졌고 이후부터는 막을 수 없는 내전과 분열의 도미노 행진이 이어질 수 밖에 없었음.

 

이 도미노를 억제할 사실상 유일한 인물이었던 장사려왕 사마예(훗날의 동진의 시조인 원제 사마예와는 동명이인으로 다른 사람)가 패권을 쥐고 싶어하던 동해효헌왕 사마월의 배신으로 하간왕 사마옹, 그 수하 장방에게 넘겨져 화형당한 시점에서 팔왕의 난이 그나마 적당한 피해선에서 끝날 상황은 멀찌감치 나가떨어지게 되었고, 그 와중에 동해효헌왕 사마월, 성도왕 사마영이 끌어들여 혼파망의 하북, 중원으로 진입한 북방 유목민들은 이미 전한 무제에게 막북대전으로 당한 뒤의 수백여년에 걸친 오랜 회복기를 거쳐 완전히 그 힘을 되찾은 상태였는데 이 와중에 중화의 실상을 깨닫자마자 곧바로 중국을 '약탈의 대상' 더 나아가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기 시작하면서 서진의 패망은 확정적으로 결정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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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EST [레벨:22]카자리아 2020.02.16 21:30
    열라붕시대 후한 시절부터 계속 누적되어온 사회 구조적 문제점(귀족 혈통의 권력 고인물화, 그로인한 부패와 자영농 붕괴 현상)을 신왕조였음에도 그다지 개혁하지 못한게 조위였는데 서진은 정통성 문제 및 이런저런 다른 문제들이 겹쳐서 때문에 저 조위보다도 더 개혁을 시도하기 어려웠음. 사실상 후한 말에 터져나오는 사회적 문제점을 거의 그대로 떠안은 채로 이어진 왕조.

    한국사로 비유하자면, 실제 역사에선 고려 고인물 권문세족 집단의 권력 고착화를 파괴시키고 혁신하여 탄생한 신왕조가 조선인데, 만일 이성계와 급진파 신진사대부가 아니라 그냥 권문세족들 중 하나가 권력을 잡고 왕씨 무력화시켜서 그대로 권문세족 체계를 유지한 채로 신왕조를 만들어내었다면 고려 말의 사회적 문제점을 거의 해결을 못하고 그대로 떠안은 채 탄생한 신왕조가 되었을 거임. 서진은 딱 그런 형태로 탄생한 왕조였고
  • BEST [레벨:33]진솔사랑 2020.02.17 08:18
    조상이 사마의 핍박했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음. 실권은 없지만 명예직인 태부에 앉히고 사마의 아들들을 정계에서 몰아내려고 한 적도 없음. 오히려 사마씨 세력을 자기 세력안에 넣으려고 했는데 고평릉때 제대로 배신 당하고 그래도 조상 본인이 사마일족을 억압하지는 않았으니 살려주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는데 일족 몰살 ㅋㅋㅋㅋㅋㅋㅋ

    개인적으로는 위나라가 통일했으면 서진보다는 정통성에서 앞서기 때문에 5호 16국으로 바로 분열되지 않고 좀 더 버텼을거 같고 망탁조의라는 말도 안 생겼을거라고 봄. 서진이 막장이었으니 전신인 위나라도 도매급으로 묶여서 까이는 느낌?
  • BEST [레벨:27]나경이 2020.02.17 08:00
    정통성이 무너지고
    사회윤리가 무너지고
    경제기반이 무너지고
    정치시스템이 무너지고
  • [레벨:19]구선생 2020.02.17 19:49
    핵심은 제위 찬탈하고 황제다 황족이다!귀족이다! 이러면서 놀아제낀 거임.
    선양으로 제위를 찬탈하면 고려 먹은 이성계처럼 시대적 한계를 절감하고 구습을 버리고 혁신 정책을 입안하는 인재들을 데리고 안정성을 높여야 됨. 대책을 세워서 국정 운영을 해야됐는데 내가 황제인데 무슨 문제가 있겠어? 이 마인드로 나라 운영하다 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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